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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Oct 27. 2023

자궁내막증의 원인에 관하여

자궁 질환을 가진 아내를 둔 남편이 갖는 트라우마

다섯 시간, 여섯 시간에 이르는 그 두 차례의 대수술을 하고 호르몬 처방약을 계속 복용했음에도, 3년이 채 못 지나 재발되어 또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다들 안타까움 섞인 걱정을 하셨다.


아무래도 내가 면역력이 안 좋은 것 같으니 비타민을 고용량으로 복용하라는 분, 프로폴리스를 먹어보라는 분, 각자 본인이 효험을 본 보조제를 추천하셨다. 자기는 암 환잔데 가슴 양쪽을 모두 잘라내고도 여태 이렇게 살아있으니 자기를 보고 힘 내라는 분도 계셨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육식이 문제라고 채식을 하라고 강권하셨다.

우리 시어머니는 "너 항상 높디높은 하이힐 신고 다녀서 배가 힘들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하셨다. 수화기 너머로 어머님의 표정이 진지한 게 느껴졌는데, 정말 배가 아프게 웃었다.

대체 알 수 없는 이 병의 원인을, 어떻게라도 이해해보고 싶으셨던 그 마음이 느껴졌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건 남편의 반응이었다. 내가 요관 스텐트를 하고 난 뒤 많이 시큰대고 아파하는 모습과, 입원실에서 미주신경성실신증상이 오는 바람에 평소 나답지 않게 아무 데나 드러누워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 아파트 한바퀴 걷고 혈뇨가 쏟아지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갑자기 나를 손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지켜?주었다. 우리는 쉬는 부부가 아닌데 말이다.


먼저 결혼을 한 언니들이, 부부관계라는 건 이런 저런 이유로 소원해지는 시기가 오곤 하는데 그걸 한번 놓치면 다시 회복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많이들 말씀하셔서, 어린 아이들 키우면서 각자 삶에 볶여서 남편이 밉고 싫을 때도 달에 몇 번 이상은 만나려고 항상 신경 쓰고 관리하고 살았단 말이지.


그런데 이번에 이 일이 터지고 나서 두 달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고, 남편에게 만나자고 했더니 순순히 응하긴 했지만 내 몸이 불편한지 계속 신경 쓰며 조심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앞으로는 자주 만나지 않겠다고 하는  아닌가. 왜?! 물었더니

나 때문에 당신 뱃속이 자꾸 끈적거려지는 것 같아..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도 당신을 사랑할 수 있으니까_ 하는 것이다.



옛날 내가 어릴 때, 먼 지인 누구가 자궁경부암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집 아저씨가 바깥 현장에 많이 돌아다니고, 집에 와서 잘 씻지도 않는다잖아. 그러고 와이프는 맘대로 건드리니 마누라가 병이 오지. 마누라가 그렇게 병이 왔는데도, 아저씨가 부인역할 하라고 요구했대잖아. 사내새끼들은 그러게 자기 처가 아픈 것보다 자기 기분이 먼저라니까

그런 이야기를 주워들은 적이 있다.


남편이 나를 귀하게 아껴주겠다는 말을 듣는데, 어릴적 주워들은 그 말이 퍼뜩 떠올랐다.

자궁경부암의 원인에 남편이 있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그 아저씨를 얼마나 무겁게 짓눌렀을까


나는 내막세포가 제 자리를 지키지 않고 자꾸 탈영을 하고 자리이탈을 해서 뱃속에 퍼져서 이 사달이 나는 건데,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 뱃속이 자꾸 끈끈해지고 유착이 일어난다니 그렇게 생각이 드는구나 싶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거 참 쓸데없는 걱정 하고 있다며 병원비 실비보험 잘 타낼 준비나 단디 하라고 웃었지만_ 남편의 시무룩한 모습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낮에 조용히 혼자 있을 때면 눈앞에 떠오르고 슬프다.




너 때문 아니야.






#자궁내막증 원인 좀 빨리 밝혀요

#우리 남편이 슬퍼해요

#실비보험 만땅타내자

#캠핑 또 가야 될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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