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비잔 중단 때처럼 호르몬 농도가 달라지면서 배가 아픈 것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하며 참았다.
열도 좀 나는 것 같고, 배가 무척이나 빵빵해지면서 아팠다.그 와중에도 아이들 식사 및 간식, 청소, 빨래 등 살림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드러누우며 주말을 지냈다.
카페에서 찾아보니, 이러다 차라리 생리가 한번 지나가면 좀 나아지더라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비잔 중단 후 첫 번째 생리가 가장 힘들고, 차차 나아지더라는..
그래, 이거 대체 언제까지 먹을 거야? 폐경되려면 아직도 10년이 더 넘게 남았잖아. 겨드랑이도 너무 불편하고, 피부 때문에 정신건강도 만만찮은 피해가 있는데, 이참에 한번 생리 확 하고 고비 넘기는 거야!
(산부인과 의사들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50세를 전후로 폐경이 온다고 합니다)
버텼다.
밑이 빠질 것 같고 배가 부어오르기도 하는 것이, 옛날에 생리통 심할 때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니, 며칠만 견뎌보면 지나갈 거라고 여겼다.
게다가 마침 또 주말이었다.
내가 가장 집을 지켜야 하는 요일.
아이들이 방에 와서 한 번씩 나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나갔다.
주말이 지나가고 월요일, 며칠 동안 힘드느라고 잠을 잘 못 이루어 고단했다. 잠이 왔다. 병원을 가 볼 생각을 못 했다. 버티다 보면 생리가 시작되겠거니, 호르몬이 빠지면 빠지는 거지 왜 유난을 떨고 복통이 오고 난린지 몰라 이놈의 거, 통증은 정말 세상 쓸데없고 귀찮은 거야, 생각했다. 점차 통증이 생리통 같지가 않고 뭔가 맹장염 증상 같기도 했지만, 사흘째 계속 울리는 몸의 신호를 false alarm(거짓 허위 경보)으로 치부했다.
월요일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날짜가 화요일로 접어들던 무렵, 갑자기 토가 나기 시작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면 잠시 괜찮았다가, 미칠 듯한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면 또 분수토를 했다. 몇 차례 그렇게 토하니까 요 며칠 식욕이 줄어 별로 먹은 게 없어 말간 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계속 오심 증상이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
밖에는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이들 학교 등교를 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9시에 병원 외래가 시작될 때까지는 아직 세 시간이 더 넘게 남아있었다.
"여보 일어나 봐. 나 응급실에 가야 될 것 같아. 나 좀 데려다줘."
내가 화장실을 드나드는 소리에 잠귀 밝은 첫째가 일어나 나왔다.
"엄마 응급실 가서 속 진정되는 수액 맞고 얼른 올게."
응급실에서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데 속에서 장이 꼬이는 것도 같고 무언가가 폭발할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컨디션이 갑자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허리를 펼 수가 없고, 어지럽고, 또 토할 것 같았다.
씨티 촬영을 하러 걸어가야 하는데 발을 뗄 수가 없었다. 휠체어에 실려서 영상의학과 앞에 끌려갔다.
거기서 결국 바닥에 토 (이미 속에 아무것도 없어서 맹물 한국자)를 쏟고 말았다. 씨티를 찍고 다시 응급실로 내려가니 소문을 전해 들은 ER선생님들이 일사불란하게 내 진료를 봐주셨다.
씨티 촬영 결과, 콩팥이 부어있고 꺼멓게 되어 있었다.
난소에 6cm가 넘는 혹이 생겨 있었다.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 나 애들 학교 보내야 되는데??
생각은 집 걱정이 한 트럭이었지만 이따 다시 올게요 할 형편이 못 되었다. 너무 아팠다. 정신이 없을 만큼 통증이 왔다.
내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산부인과 선생님도 진찰을 하시고 비뇨기과 선생님도 진찰을 하셨다.
아무튼 지금 이대로 바로 병동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건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입원을 했고, 마약성 진통제 외에는 아무것도 듣질 않았다.
"아파요 선생님 저 토할 것 같아요"
침대 위 호출벨을 누르고_ 앗차 하는 순간에 또 토를 해버렸다. 집에서 속이 다 비워진 상태로 왔기에 나오는 게 없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남편도 없는데 참말로 곤란해질 뻔했잖아.
응급실에서부터 CT실 앞 복도 사건 때문에 관심병사가 된 덕분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내가 벨을 누르면 진짜 빨리 나타나셨다.
2인실이었는데, 앞자리 어머님이 자기가 부르면 늦게 온다고 나보고 벨 누르라고 심부름을 시키곤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