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고 보면 매우 여성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사춘기 때도 여드름이 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화장을 엉터리로 대충 지우고 얼굴에 팩 한 번을 안 해도, 피부에 트러블이 나지도 않고 건조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비잔을 1년 넘게 먹으면서부터 갑자기 삼십 대 중반의 이 나이에 얼굴에 뒤늦은 여드름이 끝없이 났다. 모공도 눈에 띄게 넓어졌다.
생리날짜를 용하게 맞춰 버리시던 유난한 쭈쭈가 호르몬을 지속적으로 먹어주니 신빨이 떨어져 버려, 어느 날이라고 점지를 하지 못하고 그냥 폭주하기 시작했다. 유방통이 시작되면 한 달을 훌쩍 넘기기도 일쑤였다. 자꾸 윗속옷을 새로 사게 됐다.
비잔 복용이 만 2년이 넘어가자 겨드랑이가 채이는 기분이 들었다. 스모 경기에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선수들처럼, 가다마이 입은 형님들처럼, 팔이 편안하게 차렷이 안 되고 이렇게 들리는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 유방 쪽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다. 엄마가 유방암이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 왜 교수님은 내게 굳이 이 약을 먹이시는 걸까 의문 반 원망 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드름도 하루가 멀다 하고 온 얼굴에 돌아가며 ㅡ 두더지게임이 얼굴에서 라이브로 진행됐다.
사춘기 때 여드름을 한 번이라도 겪어봤으면 관리하는 요령을 터득했었을 텐데, 그런 게 없었던 난 짜야할 때와 그냥 두고 더 익혀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했고, 깔끔하게 짜내는 기술도 없었다.
설상가상 코로나가 일상화되면서 마스크를 벗는 시대가 다시 오고 있었다.
한 번은 2주 정도 비잔을 중단한 적이 있었다.
배가 몹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옛날, 생리 시작하기 전날의 그 느낌이었다. 골반이 우리하게 아프고 밑이 빠질 것 같은 통증 말이다.
한동안 안 겪다 다시 겪어서 그런지 너무 아파 참을 수 없다고 느꼈고, 참고 말고를 떠나 공포스럽기도 했다. 생리라는 게 높은 장벽처럼 내 앞에 버티고 솟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달까.
다시, 허둥지둥비잔을 먹었다.
2년 반이 지나가던 무렵, 요즘 들어 유난히 헛배가 불러서 식사 후에 몸이 너무 무겁고 소화시키는 시간이 지치고 힘들었다. 베트남쌀을 샀다.
식구들은 한국쌀로 지은 밥을 주고 나는 베트남쌀로 지은 밥을 먹었다.
세안을 아무리 신경 써서 해도 여드름은 하루이틀마다 돋아났고, 치료받으러 간 피부과에서 치료와 함께 얼굴에 손을 대면 안 되네 세안을 어떻게 해야 되네 선크림은 어디 거를 써야 되네 등 잔소리 듣는 것도 속상하고 짜증이 나서 비잔을 5일 정도 끊었더니 선생님이 놀랄 정도로 피부에서 갑자기 윤광이 났다.
세안이고 식습관이고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여드름이 없어지니까 정신건강이 엄청 좋아지는 것 같았다.
비잔을 먹긴 먹어야 하는데, 먹어야지, 하면서도 깨끗해진 피부를 보면 하루만 더, 하루만 더 이러면서 3주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