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보고 온 다음 날.
회사의 대표이사에게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친환경 디자인에 대해,
더 진도를 나갈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아니나 다를까, 차갑고 단호했다. 관심 밖이라는, 더 이상은 어렵다는 우회적인 말들. 공허함만 손에 남았다.
내부에서는 견제가 점점 거칠어졌다. 다른 팀들의 로비는 우리 파트를 흡수하려는 움직임으로
노골화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점점 회사에서 싸움닭 같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말수가 줄어드는 만큼, 팀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눈치를 보았다. 그렇게 노력해왔건만, 견제 속에서 우리 팀의 평가 결과는 겨우 평균에 머물렀다.
그렇게 회의감을 느끼던 어느 날, 한 팀원이 퇴사를 결심했다는 말을 전해왔다.
“항상 자동차 디자인을 꿈꿔왔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자동차 포트폴리오가 없는 자신에게는 이번 오퍼가 꿈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바이크 헬멧 회사의 디자이너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내가 꿈꾸던 친환경 디자인처럼,” 그의 꿈은 이 회사의 밖에 있을 테니.
그날 저녁, 아내에게 이직 얘기를 꺼냈다.
“거리가 너무 멀잖아,” 아내는 걱정했지만, 내 꿈을 응원해 주었다.
그날 밤은 뒤척이다 잠들 수 없었다. 떠나기까지의 시간과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갑자기 옛 파트장님이 떠올랐다.
나보다 훨씬 긴 시간을 회사에 몸담았던 그 사람도, 떠날 땐 비슷한 고민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까.
출근하자마자 사직서를 제출하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날도 면접을 주선했던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신가요?”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조율할 날짜를 생각했다. 그리고 회사엔 사직서를 제출했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회사 내부가 술렁였다.
인사팀, 영업팀, 생산 관리부서, 연구소까지… 각 팀에서 번갈아 나를 불러냈다.
견제만 하던 사람들조차 내 퇴사를 아쉬워했고 만류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들의 말은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팀장님 들에게 내게 제안 온 회사에 대해 말씀드리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다시 설명을 드렸다.
설명을 들으신 분들은 모두 아쉽지만, 응원한다는 말을 건내셨다.
이직하려는 회사의 일이 본인들이 봐도 녹록치 않은 길 같아 보였고,
험난해 보이는 것 같아 보인다는 생각을 말씀해 주셨다.
나도 아직 그 회사에 대한 내부 시스템은 잘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면접 당시 느낀 점은 이 회사와는 다르게
제조와 관련된 부분은 전무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간절함이 이런 것도 뛰어 넘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난 아직 젊으니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여러가지 생각을 안고,
난 그동안 회사에서의 프로젝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만들어낸 것들이 너무 많았다. 정리에만 시간이 꽤 걸렸다.
내 퇴사 소문이 퍼진 뒤, 대표이사와 마주칠 일은 아예 없어졌다. 우리 팀엔 한 번도 오지 않았고,
나 역시 따로 보고할 일이 없었다. 묘한 거리감은 어쩌면 마지막까지 스스로 만든 방어막 같았다.
인수인계는 다행히 수월했다. 팀원들은 항상 책임감 있게 일했으므로, 내가 따로 전달해야 할 건
샘플 몇 개와 목업 자료들뿐이었다.
그리고 떠나는 날, 오래된 임원들과 팀장님들께서 따뜻하게 작별 인사를 건네주셨다.
“우리 회사 역사상 최고의 디자이너.”
과분한 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 회사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감사함,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미완의 꿈.
모든 것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떠나오는 길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새로운 꿈을 향해 나는 발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