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을 금속 버전으로 한정판을 만들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 무렵 나는 회사의 제품 디자인을 안정시켰다.
우리 팀은 인정을 받았고, 회사의 숙원 사업이라 불리던 프리미엄 제품군도 재정비했다.
포트폴리오는 단단해졌고, 제품 디자인에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담았다.
CMF를 중심으로 한 디자인 양산 구조도 구축했다.
그리고 업계 최초로 레드닷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돌이켜 보면, 4년 동안 참 많은 일을 해냈다.
그런데도 마음속 한켠은 여전히 허기졌다.
친환경 디자인, 그것이 내게 남아 있던 갈증이었다.
재생 플라스틱 테스트를 다시 해보고 싶었다.
예전 자료를 뒤적였고, 대표이사에게 보고서를 냈다.
그날, 난 회사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대표이사의 호통을 들었다.
그의 관심은 이미 프리미엄 제품 쪽으로만 기울어 있었고,
공장이나 구매 부서에서도 친환경 소재 사용에 부정적이었다.
작은 방에서 혼자 보고서를 정리하며 어깨를 떨었다.
내가 설득한 구조와 방향성 탓에 친환경에 대한 관심을
내 손으로 밀어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그날 퇴근길,
가로등 불빛 아래 늘어진 내 그림자가 눈에 밟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맞는 걸까.
박봉에 늦은 귀가가 일상이었고,
와이프와 새로 태어난 딸이 떠올랐다.
딸이 자라 언젠가 묻는다면,
‘아빠는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이어야 하는데.
답을 찾지 못한 채 집으로 향했다.
그 즈음, 헤드헌터의 연락이 잦아졌다.
유명 전자 대기업에서 내 경력과 연차를 원한다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들어왔다.
한편으론 내 시장 가치가 증명되는 것 같아 나쁘지 않았다.
어느 날엔 또 다른 헤드헌터가 연락을 주었다.
상암동의 한 교육 회사에서 나를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 경력을 알고 연락하신 건가요?” 물었다.
친환경 컨셉을 중심으로 제품 디자인을 맡길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얼핏 흥미는 생겼지만, 도저히 내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집과 거리도 멀었고, 회사의 성격도 익숙치 않았다.
대답을 머뭇거리며 거절하려 했지만,
며칠 후 다시 온 연락은 달랐다.
“그쪽 임원이 직접 강력히 요청하셨습니다.”
묘한 끌림이 있었다.
이번엔 거리를 두고 냉정히 정보를 검색했다.
매출은 현재 회사의 세 배 정도,
주요 제품은 한글 교재와 교육 콘텐츠들이었다.
거대한 출판사 같아 보였다.
드디어 면접일.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 보았다.
멀었지만,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도착한 면접실엔 네 명이 앉아 있었다.
인사팀장 같은 사람, 나이 지긋한 두 사람,
그리고 냉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한 사람.
질문은 주로 연세 있는 두 분이 던졌다.
면접은 낯설었다.
날 검증하려는 게 아니라 확인하려는 느낌이었다.
이들은 나를 통해 친환경 제품을 설계하고 싶어 했다.
특히 아이를 위한 친환경.
아이의 손에 닿는 순간부터 가장 안전한 제품.
이 제품을 프리미엄화시켜 회사를 다음 단계로 이끌고 싶다는 욕심이 읽혔다.
개발 비용이나 리스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이상한 기운에 사로잡혔다.
무엇인가 강렬히 호소하는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차올랐다.
왜 유아용품으로 생각을 못했을까...
너무 일반적인 제품에서 해결하려고 했었던 건 아닐까...
내 디자인의 가능성은 겨우 이런 데 멈추고 있던 걸까...
면접 마지막에 물었다.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십니까?”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회사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일들로 가득하고,
가족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불안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고민했다.
현 직장에 대한 미련, 유명 전자 대기업에서 오는 오퍼들,
그리고 거리가 먼 교육 회사.
내게 의미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끝내 결정하지 못한 채,
묵직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