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 오후. 찬 비가 주르륵 내리고 있었다. 그 비는 모든 것을 더 어둡게, 더 무겁게 만들었다.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비는 나뭇잎을 바닥에 내리치고, 그 잎들은 젖어 축 늘어진 채 빗자루질조차 힘들게 했다. 길가에 떨어진 은행 열매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그것마저도 불편하게 다가왔다. 11월에는 공휴일도 없다. 주말만을 의지해야 하는 달. 그러나 주말마저 산책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싸늘하고, 그래서 늘 사랑받지 못하는 달이 되곤 한다.
이런 날, 나는 어김없이 동네의 작은 카페에 들렀다. 따뜻한 라떼 한 잔을 손에 쥐고, 공허한 마음을 잠시 달랬다. 어렸을 적 느꼈던 허전함이 11월과 함께 찾아오곤 했지만, 올해는 좀 다르다. 더 이상 특정한 달에만 그런 감정이 찾아오는 게 아니다.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두렵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다 내가 이토록 혼자라는 사실이 잊힐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 다시 외로움에 사로잡힌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카페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런 생각들에 잠긴다.
“정신 차려. 넌 가장이야. 넌 잘해야 해. 가족을 생각해야지.”
전에는 이런 말이 그저 흘려버릴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이 거대한 무게로 내 마음을 짓누른다. 한숨이 많아지고,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늘어간다.
주말이면 TV 앞에서 무표정하게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 무표정 속의 무게, 그 침묵 속의 힘듦이 지금의 나와 겹쳐진다. 이 시기가 지나면,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삶의 끝은 가까운 것인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는 걸까. 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 채널이 있다. 제목은 ‘김치와 바게뜨’. 20대 후반의 한국 남자와 프랑스 여자. 둘은 결혼해서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공장 일용직도 하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도 다녀오며, 함께 일하고, 웃고, 사랑하는 모습이 그저 꾸밈없이 담겨 있다. 그들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오래전 시트콤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남편은 힘들어도 아내에게 장난을 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구박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분명한 애정이 흐른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나도 한참 고민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진로를 놓고 갈팡질팡하던, 제대로 된 디자인을 하고 싶어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려 했던 그때.
그 시절과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 20년이 흐른 지금은 무엇이 변했을까.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밤낮 없이 일해왔다. 디자이너로서 일을 하며 늘 감사했고, 예민하고, 생각이 많았으며, 세상에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많은 일을 벌였다. 그렇게 20년을 보내고, 이제는 이 자리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 우울함과 함께 이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는 나.
가장으로서의 고민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나이가 드신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고, 대학을 준비하는 딸도 있다. 상처 많은 와이프는 내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다. 모두들 내가 그들의 상담자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연락조차 없는 인맥들.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지 않으면 그들은 나를 잊는다.
그들에게 상처받았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나도 그들에게 그랬을까. 되짚어 보지만, 괘씸함만 남는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어린 국제부부의 일상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삼고, 감사해야 하는 내 모습이 길게 늘어진 그림자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그림자의 존재라도 감사해야 하는 걸까.
내가 걱정된다고 꾸준히 전화를 주는 친구.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마음이 누그러지고 눈물이 나려 한다.
그 작은 위로 덕분에, 나는 또 하루를 견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