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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Jul 26. 2019

지하철 군상 (群像)

♪Ellegarden - 高架線

남북으로 이어진 철도. 이 앞에는 꼭 있을 거라고   
南北へ続く高架線
この先にはきっとあると




♪Ellegarden - 高架線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한다. 

무어가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주변에서는 종종 깜짝 놀라고는 한다. 그러니까, 보통 출퇴근은 택시를 타고 다니곤 했다. 집과 회사를 오고 가는데 대략 이만 원 정도가 드니, 택시비로 한 달에 많다면 80만 원도 썼다는 이야기다.  '다시' 지하철만 타고 출퇴근을 한 지 2달이 조금 넘으니, 이제 지하철도 다시 익숙해졌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쓰는, 조금은 과거의 이야기다. 




우리 집은 신도림역 근처에 있다. 노래 가사에도 등장하는, 출퇴근 시간대에는 붐비기로 유명한 지하철역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생겼던 공황 증세를 경험하고 난 뒤, 이 러시아워의 지하철은 정말 곤욕이었다. 처음부터 이런 증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갑작스러운 그런 경험이었다. 몇 년 전 어느 날인가, 그 북작한 출근 지하철에서 기절을 한 날이었다. 


당시, 1호선 수원행 전철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고 휴대전화는 발치에 떨어져 있었다. 그것보다 당황스러웠던 광경은 내 주변으로 1미터 - 당시에 느끼기엔 그랬다. - 정도의 원이 형성된 모습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타고 있는데, 나에게 신경을 쓰면 번거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이 나를 피해 서로 더 붙어있는 사람들의 군상에, 초면일 그들에게 알지 못할 서러움이 일었다.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쳐다보았지만, 눈이 마주쳐지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어딜 보고 있던 걸까. 





이후, 사람이 많은 곳이나 시선이 흩어지는 곳에서 현기증이 나는 이런 상황을, 굳이 질병이라 확진받고 싶지 않았다. 그 날 지하철에서의 모습이나 시선처럼 병명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거라 생각하니, 차마 병원으로의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회에서 아픈 것보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지금보다도 더 아픈 일과, 시선이 따라올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꽤 어리석은 선택이었지.


여하튼 그래서, 병원을 가는 대신 최대한 지하철을 피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타야 될 때면 한가한 지하철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거나, 타더라도 N-1이나 N-4에 타, 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때부터 데이터 용량도 많이 늘렸다. 늘 집중할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기 위해서였다. 시선을 둘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유지하며, 그 보상으로 주머니 사정이 조금씩이지만 나아지면서,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그래, 이건 시발비용이야.' 라며 택시를 한 번, 두 번씩 타기 시작했다. 걸을 일 없이 편하게 목적지 앞까지 내려주는 것만으로도, 적어도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간혹 있는 택시 기사님들의 수다나 불친절함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카카오택시라는 내게 있어선 혁신적인 수단이 생긴 이후, 깨달았을 땐 택시는 나에게 당연한 출퇴근 수단이 되었다. 현관문을 열며 택시를 잡는 건 하루의 시작과 같았다.  1년 정도는 그렇게 열심히 일해 받은 월급을 거리에 뿌렸다. 편함에는 그만한 돈이 든다는 당연한 이치를 몸소 체험했다.  





식상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그 날 따라 택시가 너무나도 잡히지 않았다. 지각을 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지만 신도림역으로 향했다. 그 당시엔, 마음이 중요하지 않았다. 지각은 질색이야. 비 때문에 지하철도 연착인지 원래 사람이 많은 신도림역은 계단까지 줄이 서 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오전 반차를 쓸까. 온갖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샌가 내가 탈 차례가 되었고, 뒤로 도망갈 새도 없이 인파에 휩쓸려 만석, 그 이상의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부자유스러운 자세라 평소처럼 영상을 보며 갈 수 있는 환경도 아니라, 그냥 눈을 감고 덜컹거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가는 중, 정말 < 덜컹 > 하며 사람들이 파도를 쳤다. 우르르 쓰러지는 사람들에 맞추어 나 역시도 자연스레 기우뚱했다. 당황스러운 안내 방송이 귀에서 흐트러졌다. 앗차, 위험하네.

 

" 괜찮으세요? " 

" 죄송합니다. "


웅웅 거리는 기분을 뚫고 주변의 소리가 들렸다. 그 누구도 잘못한 건 없는데, 서로가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 역에 도착했을 즈음엔 다시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덕분에 회사까지 눈을 뜬 채 타고 갔다. 눈이 뜨이는, 사소한 변화였다.



 

그렇게 요즈음의 나는 다시금 출근 지하철을 탄다. 

시야가 넓어진 지하철은 의외로 재미있다. 러시아워에 조금이나마 앉아가기 위해 엉덩이가 들썩이는 사람, 어디 즈음 내릴 것 같은 느낌의 사람을 발견하고, 맞추는 재미. 그리고 그 자리를 쟁탈(!) 하기 위해 눈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대체로 나는 잘 맞추는 편이라 십중팔구는 신도림 다음 역인 대림이나 구.디.단 정도에선 앉아서 출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땡. 옆 사람에게 졌다. 오랜만에 서서 가는 지하철에서 당시의 생각을 떠올려보았다. 어쩌면 그저 당시 많은 일에 치였던 터에 과로로 인한 현기증이었을 수도 있었고, 그저 무서워서 피한 것 때문에 돈도, 마음도 다쳤지 싶었다. 지난 일이라 이렇게 떠올릴 수 있는 거겠지만. 마음먹기 따름일까. 생각보다 금세 내릴 역 안내 방송이 나왔다. 오늘도 역시, 아무 일도 없던 평범한, 출근길이었다. 




회사로 걸어가는 아침, 저녁에 술 한잔 할까 하는 권유를 받았다. 어떻게 돌아갈지 모를 일 투성이라, 우선은 알았다 했다. 뭐, 못 마실 수도 있지만 마음도, 지갑도 넉넉하니. 그러자 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해 보였을 수많은 출근길의 군상 중 한 사람의, 그런 이야기다. 다들, 그렇게 오밀조밀, 각자의 모습으로 각자의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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