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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Oct 29. 2019

단풍과 낙엽이 겹치는 계절에

♪Voy - Ever Ever ( feat. 계피 )

창문을 닫아도 계절은 오고
두 눈을 감아도 진달래는 붉고
긴 꿈에 헤매도 아침은 오고
돌아서 있어도 흔들리는 마음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외투 안에 반팔을 입었는데, 이번 주는 긴팔을 안에 입어도 외투 안으로 찬 바람이 밀고 들어오는 날씨로 변했다. 어젯밤엔 갑작스레 비도 내렸더랬지. 이런 일기예보는 참 잘 맞지요. 월요일의 직장인이란 다들 그렇겠지만, 주말 내내 일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학교까지 가야 하는 월요일을 맞이한 터에 기분 탓이라기보단,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렇게 캄캄한 학교 거리를 걷다 보니 노란 무언가가 보였다. 잠깐 우산 너머로 고개를 들어보니, 길게 나있는 학교 길 양옆으로 노란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음? 지난주 반팔 입고 있었다니까?






단풍과 낙엽이라는 말은 가을을 맞이해서 함께 오는 말이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단풍은 여름의 색이 변하는 과정이고 낙엽은 그 잎사귀들이 떨어지는 현상이니, 단풍이 오고, 낙엽이 진다는 표현이 맞겠다. 뭐, 맞지 않더라도 보통의 순서는 이게 맞는 것 같으니 넘어가자.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푸르다고 생각했던 큰길의 색이 바뀐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하늘이 아닌 땅에서 먼저 단풍을 만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학교를 상징하는 건물을 뒤덮은 담쟁이 식물도 밤이었음에도 붉그스레하게 빛나고 있었다. 왜 그래 너네. 






언젠가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먼저 나이를 드신 분들의 이야기를 요즘 자주 떠 올릴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걸 느끼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세상이 그만큼 빠르게 흐르고 있었던 거구먼. 적어도 단풍이 익을 시간은 줘야지, 아직 설익은 색의 낙엽들을 쳐다보며 괜히 서글퍼졌다. 유독 빠르게 흐르는 한 해였다. 눈을 깜빡이면 메마른 나뭇가지와 함께 한 해가 끝날 테니 과거형으로 써도 무방하겠다. 안녕 2020년.






어릴 적,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막연하게 배워와서, 외투 대신의 큼직한 가디건도 많은데 이러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채 다 입어보기도 전에 장롱 속에 들어갈 것 같아 걱정을 하며 걸었더랬다. 온갖 것이 걱정이고, 불안한 밤길이었다. 밤길은 누구에게나 참 불안하고 무섭다. 어릴 땐 밤에 일을 시작하기도 했는데. 나이가 든 탓이라고 투덜거리다 보니 비가 잠깐 그쳤다. 


학교를 벗어나, 우산을 접고 쳐다본 거리에는 아직 초록 초록한 나무들이 있었다. 괜스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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