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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모 Nov 03. 2023

미라클나잇

우리의 밤은 당신의 아침만큼 아름답다


우리는 "아침지상주의"이다. 자고로 우리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먹을 수 있는 것이며,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부지런하기 때문에 마땅히 성공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갓생과 열정으로 무장한 사람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며 스스로가 기꺼이 장작이 되어 불타는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감탄을 보내곤 한다. 얼리버드 세일을 노리면 저렴한 쇼핑을 할 수 있고 오픈런을 해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자기계발을 위한 미라클모닝족에게 박수를 쳐주는 사회에서 야행성 인간은 여러모로 참 힘들다. 



나에게 아침은 전혀 미라클하지 않다. 아침은 핸드폰 알람이 온 정성을 쏟아 소리를 지르고 수십번을 도와주어도 좀처럼 친해질 수 없는 친구이다. 자기 전 애플워치를 차며 "내일 아침은 손목이 덜덜거리니 제때 일어나겠지"라고 기대하지만 이조차도 헛수고일 때가 더 많다. 가끔 운좋게 빨리 눈을 뜨더라도, 굳이 일찍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렇게 맞이하는 아침은 유튜브나 미라클모닝 애호가들이 말하는 "고요함"이나 "나를 돌보는 시간"과는 거리가 멀다. 양치를 하며 출근 전 준비시간을 줄일 수 있는 최적의 동선을 짜고 극강의 효율을 고려한다. 그리고 출퇴근시간과 교통상황까지 감안하여 집을 나선다. 느긋한 아침식사나 명상타임, 차나 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사치이다. 내게 아침은 모든게 딱딱 맞아떨어져야만 하는 잘 짜인 시퀀스이다. 



미라클모닝이라는 말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뜨고 아침 시간을 이용한 자기계발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나 역시도 관심이 생겼다. 미라클모닝에 대한 간증글을 보면 모두들 아침을 활용해 엄청난 성장을 하는 것 같았고 그야말로 '갓생'을 살아내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유명한, 성공한 인물들은 아침시간을 잘 활용했다는 여러 책과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면 '역시 옛말은 틀린게 없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모두가 아침 일찍 움직여 부지런함을 발휘하길, 그렇지 않다면 이 각박한 사회에서 도태될 수 있음에 경각심을 갖길 강요하는 것 같아 불편했지만 미라클모닝을 해내는 이들이 멋있어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나도 미라클모닝을 실천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결과는 안봐도 비디오(요즘애들은 비디오를 몰라서 '안봐도 비디오'라는 문구 자체가 나이를 가늠해주는 척도라더라. 그치만 '안봐도 비디오'만큼 눈에 훤한 결과임을 알려주는 찰떡같은 수식어는 없다)



미라클모닝 1일차, 일어나지 못했다. 

역시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음을 생각하며, 시도 자체에 의의를 두었다.



미라클모닝 2일차, 겨우 일어났다가 도로 누웠다. 

다시 잠에서 깼을 때, 남들처럼 해내지 못하는 실낱같은 나의 의지에 짜증이 날 뻔했지만 출근하기 바빠 짜증도 잠시 넣어두었다. 하지만 출근길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미라클모닝 3일차, 일어나자마자 양치질을 하여 잠을 깰 수 있었다. 

그리고 미라클모닝의 정석처럼 커피를 한 잔 타서 책을 읽었다. 오랜만에 책을 읽는지라 활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비로소 아침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나 자신이 멋있게 느껴졌다. 



미라클모닝 4일차, 일어나지 못했다. 

누워서 어렴풋이 꿈을 꾸는데 일어나서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장면이 지나갔다. 잠에서 깨고 나서는 남들처럼 해내지못하는 스스로에게 무척 화가 났다.



미라클모닝 5일차,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는지 알람소리가 나자마자 일어났다. 

비몽사몽이었지만 겨우 잠을 깨고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하필 고른 책이 "마음챙김"이었다. 내용은 흥미로웠지만 너무나도 마음을 챙겨버렸는지 졸기도 했다. 손을 움직이면 잠이 깰 것 같아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필사해보기도 했다.



미라클모닝 6일차와 7일차, 주말이니 여유있게 늦잠을 자자고 마음먹었다. 

사실 평일이라고 무언가를 더 다급하게 해낸 것은 없었으면서 주말이 오니 자연스럽게 '여유'를 부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월요일이자 미라클모닝 8일차, 일어나지 못했다. 

분명히 알람소리도 들었고 일어나야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어나지 못한 자신에게 무척 실망스러웠다. 한 주의 시작부터 망친 것 같아 출근을 하기 전부터 기분이 나빠질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 날, 나의 미라클모닝 9일차, 10일차, 11일차는 없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지만 혼자 열정을 불태우며 시작했던 나의 미라클모닝 도전은 조용히 막을 내렸다.



그 후로도 나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는 자기계발과 미라클모닝에 대한 게시물이 꾸준히 등장했으며 주변에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생겼다. 나는 멈췄던 도전이 아쉬워서, 또는 그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에 이후에도 종종 미라클모닝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2주 남짓에서 실패했다.



나의 아침은 수많은 미라클모닝의 찬양자와 갓생을 지향하는 이들처럼 고요하지도, 집중과 성장, 자기돌봄이 충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비난과 자책이 난무하는 시간이었다.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끊임없이 부러워했으며, 그 동력에 내게는 없다는 사실에 패배감을 느꼈다. 모두가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나도 한번 열심히 살아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음에 스스로가 밉기도 했다. 이렇게 나의 미라클모닝 도전기는 자기비난과 패배감으로 뒤덮였다. 



동시에 나는 하루 중 어느 시간대에 집중력과 에너지가 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밤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새벽과 아침이라는 이른 시간이 집중과 고요함을 선물해주는 시간이라면 내게는 밤이 그러했다. 미라클모닝 따라쟁이가 되기 전의 나는 밤에 사부작사부작 할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밤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휴식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시간으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그동안의 나는 미라클모닝러가 아침에 한다는 바로 그 '생산성'넘치는 일들을 주로 "밤"에 해왔던 것이다. 

그러니 내게 맞는 것은 미라클모닝이 아닌 미라클나잇이었던 셈이다.  사실 시간에 굳이 "miracle"함이 붙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다. 시간을 미라클하게 써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일면 동의하기도, 동의하지 않기도 한다. 이는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 'miracle'함을 스스로에게 편안함과 집중력을 주는 시간대를 가리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의심없이 밤을 선택할 것이다.  내게는 그야말로 미라클나잇이다.



사람이 생산성과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은 모두 다르다. 학교생활 또는 직장생활이 그러하듯 우리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규칙적인 생활과 삼시세끼의 가치를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살아왔기에 당연히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본인의 선택이나 리듬과는 무관하게 자연스럽게 아침형 인간을 지향하도록 살아왔다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밤을 사랑하는, 미라클나잇을 보내는 이들이 나만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나는 밤의 적막함을, 모두가 자는 시간에 홀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를,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단정히 정돈하는 시간을 사랑한다. 이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번 미라클모닝에 실패한 덕분이다. 남들이 아침에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생산성있게 보낸다고 부러워 할 것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생산성있게 보내는 시간이 따로 있으며 이는 제각각인 것이다. 



미라클나잇. 

우리의 밤은 당신의 아침보다 아름답고 뜨거울 수도 있다. 

나와 같은 미라클 나잇을 보내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부디 미라클모닝에 기죽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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