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희 Sep 09. 2019

직장인 추석 풍경

추석을 맞이하는 직장인의 기쁨과 슬픔

1. 선물 없는 추석

첫 회사를 다닐 때 회사가 어려웠던 적이 있다. 추석임에도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얼마 하지도 않는 참치나 스팸세트 하나 사주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지하철 안은 북적거렸다. 저마다 하나씩 들고 가는 추석 선물을 보며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깊은 상처가 됐나 보다. 그날의 우울했던 기억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 


2. 선물 대신 상품권

지금 회사는 추석 선물로 상품권을 준다. 상품권 금액은 크지도 작지도 않다. 예전에는 명절 선물 몇 가지를 고를 수 있었다. 그게 바뀌어 상품권을 지급한다. 부피만 크고 활용성도 떨어지는 선물보다 상품권이 훠얼씬 좋다. 손은 가볍지만 종이 한 장이 마음을 든든하게 해 준다. 


3. 리더의 선물

회사에서 따로 명절 선물을 안 주니 부장님이나 팀장님들이 사비로 선물을 준비해서 나눠준다. 큰 거는 아니지만 그것도 인원이 여러 명이라 제법 돈이 들 텐데 굳이 챙겨주신다.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상품권이랑 다르게 실물이 손에 쥐어지면 제법 기분이 좋다. 리더의 권위는 지갑에서 나온다는 얘기가 진짜인가?


4. 명절 전은 오전 근무

우리 회사는 명절 연휴 시작 전 평일은 오전 근무만 한다. 사실 이게 제일 좋다. 전에는 오전 근무 끝나기 전에 전사 직원들이 다 같이 모여서 다과회도 가졌다. 이것도 괜찮았는데 회사 규모가 커져 다과회는 없어지고 12시 땡 하면 다들 집에 간다. 그날 출근해서 일이 잘 될 리 없다. 너도 일 안되고 나도 일 안되는걸 서로 잘 안다. 명절 전의 들뜬 기분을 오전 근무가 배가시킨다.  


5. 택배가 한가득

명절이 다가오면 회사 한 구석에 택배 상자가 넘쳐난다. 김영란법 이후에는 그것도 좀 줄어든 것 같은데 그래도 다양한 선물 박스가 회사로 도착한다. 저게 누구의 것인지, 누가 주문했는지, 품목이 뭔지 관심이 안 갈 수 없다. 지나가다 슬쩍 한 번씩 들여다본다. 내가 받을 선물이면 그게 무엇인지 추측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6. 연휴의 시작주는 마음이 풍성

연휴가 시작되는 주는 다들 마음이 여유롭다. 오직 연휴의 시작만 기다리며 보낸다. 역시 다들 안다. 다 같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그 주에 일이 잘되면 이 세상 직장인이 아니다. 월요일이지만 곧 있을 추석에 기운이 부쩍 난다.


7. 길어도 문제, 짧아도 문제

2017년 10월은 이런저런 휴일이 겹쳐 이례적으로 길었던 추석이었다. 10일 정도 쉬었던 것 같은데 다들 쉬고 와서 하는 얘기가 힘들었단다. 나도 힘들었던 건 마찬가지고.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장기 휴가에 익숙지 않아 잘 쉬지 못한다. 오래 쉬면 마음이 불안하다. 하지만 이번 추석은 목, 금뿐이다. 상당히 짧다. 너무 짧아서 수요일 하루를 휴가를 썼다. 이렇게 짧으면 심하게 아쉽다. 길어도 문제, 짧아도 문제. 개인적으로 가장 적당한 건 평일에 3일 정도 쉬는 게 좋다. 


8. 그해 추석

2005년에는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추석 연휴 시작 전날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가고 있었다. 직원 누나와 같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햇빛은 쨍하고 습도는 낮고 그늘은 서늘하고 하늘은 파란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추석에는 항상 날씨가 이런 것 같다고 내가 말했고 거기에 동의해주던 누나가 생각난다. 이 장면이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잘 잊히지 않는다. 별일 아닌데 추석의 한 장면으로 뇌리에 깊게 박혀있다. 그리고 추석만 되면 그때의 가늘 날씨가 떠오른다. 우리의 큰 명절 설날과 추석 중 날씨로만 따지자면 추석이 압승이다. 선선한 가을 날씨에 맞이하는 연휴는 마음을 가볍게 해 준다.


9. 복귀의 어려움

휴가 복귀는 참 어렵다. 직장 생활을 아무리 오래 해도 항상 어렵다. 시간이 지나 강도가 좀 낮아졌다 뿐이지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내 사업을 하면 좀 나아질까? 직장인들의 연휴 후유증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연구 과제다. 연휴가 끝나가 하루 이틀 정도만 남게 되면 벌써 마음이 우울하고 기분이 안 좋다. 아직도 하루 이틀이나 남았네가 아니라 벌써 하루 이틀밖에 안 남았네의 부정적인 마음이 가득 찬다. 휴가 복귀 후 후유증을 떨쳐내는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다. 일에 다시 몰두하는 것. 힘들어도 몰두하면 금세 회복된다. 마치 계곡에서 안 젖을 요량으로 바지만 걷고 놀다가 온몸을 흠뻑 적셔버리면 놀기 편한 것처럼 말이다. 대신 복귀 첫날은 무조건 칼퇴다.


10. 추석입니다

짧아서 무척 아쉬운 올해 추석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명절이 주는 따뜻함이 있거든요. 무엇 때문에 따뜻할까요? 서로의 마음이 따뜻하니 그게 전달되나 봅니다. 모든 직장인들 근심은 잠시 내려놓으시고 즐거운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지킨 양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