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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로 먹고 산다는 판타지에 대하여

by 심색필 SSF

단순한 문장일 수 있지만 어찌 보면 인간사를 꿰뚫는 한마디의 정의 같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 수 있을지도 문제지만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기 시작한다면 과연 그 일을 여전히 좋아할 수 있을까?


나는 반반인 것 같다. 다소 치킨집 같은 대답일 수 있으나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일에 수반되는 좋아하지 않던 일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세계의 천재들과 엄청난 경력자들을 마주하고 때때로가 아닌 대부분의 시간을 내 무력함과 나약함에 좌절하고 자괴해왔던 것 같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으로 업을 사는 삶을 꿈꿨지만 체대라는 허들을 넘는 데 걸린 시간에도 꽤나 긴 시간이 흘렀다. 운동도 힘들었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공부였다. 막상 학교를 들어가니 내가 넘은 허들은 정말 말도 안되게 낮은 허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새끼 거북이가 포식자들이 활개치는 해변을 향해 나아가면서 소금끼 가득한 바닷물에 간신히 도달한 주제에 눈이 따갑지 않다고 객기를 부린 느낌이었다. 나아가야 할 세상에 비하면 정말 별거 아닌 필수요건을 이제 막 하나 갖추고서 말이다.


새끼 거북이들이 포식자를 피해 바닷가로 열심히 기어가고 있다.jpg


이후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택했다. 기껏 들어간 체대라는 타이틀과 상관없는 사업에 도전했고 또 한 번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들에 목을 매며 살아왔던 것 같다. 누구나와 같이 세상이 억까한다고 생각했던 코로나를 겪고 이후에도 여러 사건들을 겪었다. 많다면 많은 경험을 하고 난 이후에야 글을 쓰는 일에 도전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 모든 일의 공통점은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을 할 때 흥미가 가지 않으면 일을 시작하지조차 못했다. 이 일을 시작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3할이 넘으면 도전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항상 살아가는 데 있어 더 어려운 것은 나머지 7할이었다. 좋아하는 일 하나만을 하고 살아가는 것은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명백한 판타지인 것 같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면서 그 일을 여전히 좋아하는 것은 판타지긴 해도 그나마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SF나 현대판타지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내공이 쌓여 내가 좋아하는 일에 굳은 살이 박히기 시작해야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것 같다. 그때부터는 단순 판타지가 아니라 수필과 자기개발서와 같은 영역이 되겠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면서 그 일에 대한 회의와 후회가 없다면 난 그 분야에 대한 전문가나 더 나아가 고수가 된 것이니까. 내가 그 일을 하면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은 근성이 부족한 것이고, 내가 그 일을 하면서 돈을 벌지만 즐겁지 않다면 아마 재능이 부족한 것일 것 같다.


영화 ‘신의 한수’에서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세상이 고수에게는 놀이터요. 하수에게는 생지옥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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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내가 보는 세상은 놀이터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근 몇 년안에는 세상이 놀이동산이나 테마파크처럼 보였으면 좋겠다. 그 정도가 되려면 절정의 고수가 되야겠지?


언제쯤 화경의 경지에 오르려나... 에휴... 당장 하기 싫은일부터 다시 해야하는디... 해야지 뭐 어떻게 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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