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기술이 발전해 다른 생명체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조금 해괴망측한 주제이긴 하지만 만약에 기술이 발전해 우리가 다른 생명체와 대화할 수 있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생명체와 대화를 나눌 것인가?
말도 안되는 설정이라 배설하듯이 한 번 글을 뱉어보려고 한다. 뭐... 대부분의 내 이야기가 그렇지만...
최근에 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들어가면서 의도치 않게 맹목적인 반대만을 하는 환경단체에 대한 불만이 끓어올랐다. 자료를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채식주의를 강요하는 영상이 올라왔고 순간 주제에 대한 글감이 떠올랐다.
나는 말을 하지 못하는 다른 생명체에게 말을 걸어본다면 토마토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다. 여러 구황작물과 채소, 과일들이 있지만 그냥 토마토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스파게티 소스로 서양권에서는 대한민국의 마늘보다 훨씬 더 중요한 식재료로 사용되는 토마토.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과일도 아닌 놈이 과일인 척 위선을 떠는 녀석으로 인식이 박힌 그런 녀석.
세계적으로 한해 기준 1억톤 이상이 소비되고 스페인에서는 입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축제의 한 요소로만 사용되는 이 녀석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며 생을 마감할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만약에 토마토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녀석들을 인터뷰해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기자 : 인간의 말을 터득한 토마토를 취재하러 나왔습니다. 토마토님. 인간의 말을 할 줄 알게 되셨는데요. 기분이 어떠십니까?
토마토 : 제발... 제발... 한 번에 죽여주세요. 저렇게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마 토마토를 인터뷰한다면 그들은 캔속에 들어있는 홀그레인 토마토와 선드라이 토마토를 가리키며 빨리 자신을 입안에 넣어 짓이겨달라고 애원할 것 같다.
‘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최근에 극성 베지테리언들이 가지고 나온 가장 핫한 문구가 바로 저 말이었던 것 같다. 단순히 동물들이 새빨간 피를 흘리고 죽어갔기 때문에 그들은 육식을 폭력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사실, 육식을 굉장히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써 의문이 갈 때가 많았다.
“너무 불쌍해...”
“와... 맛있겠다.”
글자로 옮겨보니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T 100%의 인간과 상대방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공감하는 F 100%의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대사같지만 저 두 문장은 복어 해체를 하기 전과 회가 된 복어를 바라보는 동일한 한 사람에게서 나온 대사였다. 참 아이러니 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건 인간의 욕심인것일까? 아니면,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체들의 본능인 것일까? 그렇다면 매년, 매달, 매주, 매일을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수많은 생체실험을 당한 토마토들이 끝없이 죽어나가는 것은 비극일까? 아니면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순리인가? 아마 이 입장을 제대로 들어보기 위해서는 피해자인 토마토의 이야기를 들어봐야하는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사실 토마토랑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해도 쉽사리 말을 걸지는 못 할 것 같다. 케챱 애호가로 집에 녀석들의 수혈이 가득담긴 토마토혈액통을 찬 채로 그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건 아무래도 좀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검은색 양복을 입고 인사를 하러 가야 하나? 흠... 글을 쓰고 나니 좀 또라이 같네... 크흠... 한동안 햄버거는 피해야겠다... 토마토 파스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