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이 있긴 한 거지?
“다음에 밥 한 끼 하자.”
“다음 건은 진짜 좋은 건으로 줄게요.”
“다음에 놀자.”
“다음 이 시간에.”
“다음에 잘해줄 테니까 이번건은 좀 저렴하게...”
다음의 함정. 대한민국에는 이 다음의 함정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단순한 인사말이 되기도 한 다음에라는 말은 때로는 그 온도가 너무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그 뒤에 숨은 속말로 사람을 혼돈시키기도 하는 것 같다.
“하아... 진짜 아쉽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조금 더 있었을 텐데...”
“뭐... 오늘만 날인 것도 아니고... 다음에 보자.”
“그래. 다음에 보자. 연락해.”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 항상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관계가 있고, 항상 먼저 연락이 오는 관계가 있다. 누군가를 더 좋아하는 것도 갑을관계로 정의될 수 있다면 친한 친구사이도 어느 정도 갑을관계가 있겠지.
“아... 진짜 미안. 나 이번에 못 갈 것 같아.”
“와... 이틀 전에 파토내는거 진짜 매너 미쳤네.”
“하아... 우리 그럼 그냥 다음에 볼까?”
그 자리에 누군가 한 명이 빠지면 모이지 않는 모임이 있는 가 하면...
“미안. 나 다음 주에 못 나갈 것 같아.”
“에구... 그럼 어쩔 수 없지. 다음에 같이 보자.”
“그러게. 다음에 같이 놀자.”
“내 몫까지 더 재밌게 놀아줘.”
“알았어. 다음에 따로 시간 잡자.”
누군가의 부재는 그렇게 큰 구멍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모임도 있기 마련이다. 상황에 따라서 많이들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하지만 사실 사람에 따라서 그 상황이 많이 바뀌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야. 포즈 똑바로 안 잡아!”
“죄송합니다.”
-찰칵!-
“어쩜 대충 손 하나만 올려도 이렇게 그림이냐?”
“에이. 너무 그러지 마세요.”
실력에 따라서 평가가 바뀌는 게 인간사라고 하지만 인간에 따라서 평가가 바뀌는 것도 사실인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인 것 같다.
“이 악물고 버텨. 결국 이겨내야 하는 게 세상이야. 이런 거에 좌절하고 쓰러지면 결국 거기까지인 거야.”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포기할 줄 아는 용기도 중요하고 포기하는 순간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사력을 다한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건 결코 쉽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위로가 되는 말보다 이겨내라는 딱딱하고 차가운 말이 훨씬 더 위안이 될 때가 많은 것 같다.
“힘들면 포기해.”
“사람 사는 게 어떻게 다 아름답겠냐? 너무 힘들면 좀 쉬어.”
위로가 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런 말들은 한편으로 내가 좇고 있는 꿈은 애초에 이룰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뭔가 쉬라고 하면 오히려 더 편하게 쉬지 못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다.
“수틀리면 빠꾸.”
“아니다 싶으면 빠꾸.”
“못 하겠으면 빠꾸.”
“그냥 냅다 빠꾸해. 아빠 여기 있을게.”
[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
최근에 전 세계를 울음바다로 만든 ‘폭삭 속았수다.’에서 아버지 관식이 딸 금명이하테 이야기하는 구절이다. 항상 너의 뒤를 지키고 있을 테니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라.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하고 안된다고 해도 그런 자식을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것이 부모라는 존재이니 만큼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장면인 것 같다. 그러나, 시리즈에서 금명이는 언제든지 빠꾸하라는 관식의 말에 절대 빠꾸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제든지 빠꾸하라는 그 말이 용기를 준 것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현실과는 조금 괴리가 있는 말이 바로 이 ‘빠꾸’라는 단어이긴 하지만.
“다시.”
“다시.”
“빠꾸.”
“아... 진짜... 제대로 안 해?”
거 참 진짜 드럽게 깐깐하네. 불과 얼마 전에 절차에 대한 글을 쓰고 노력과 시간의 중요성에 대한 글을 썼지만 이 ‘빠꾸’라는 말을 계속 듣다 보면 쉽게 부아가 치민다.
“아... 거참. 진짜 너무하네. 뭘 어떻게 더 해달라는 거야?”
“그러니까. 시발 나도 모르겠다. 이제.”
“하아... 그래 다시 해야지. 뭐 아름답기만 하면 그게 생존이냐? 원래 사는 게 죄다 더러운 거지.”
입이 대빨 튀어나온 채 별이 보이는 옥상에 가서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그렇게 사람들을 씹어대도 속이 풀리지 않지만 결국 통장잔고와 소중한 사람들과의 카톡을 보면 다시금 환하게 빛을 내뿜으며 나를 빤히 응시하는 컴퓨터 앞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미안해. 우리도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건데 뭐 어쩔 수가 있나? 그래도 이번 거 잘 끝나면 다음에 진짜 잘 챙겨줄게. 진짜로.”
이가 바득바득 갈리지만 그래도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저 기약 없는 말에 다시금 미소 가득한 가면을 안주머니에서 꺼내 살포시 얼굴 위로 덮는다. 아직 성공하지 못한 나를 탓해야지. 누구를 탓하겠는가?
“아휴... 오늘은 음식이 거의 다 떨어졌네. 오늘은 이거 먹고 다음에 오면 조금 더 챙겨줄게.”
무한리필 음식점에서 한 번씩 사장님들이 어이없는 이야기를 하실 때가 있다. 그렇게 죽어라 먹지도 않았는데 재료가 떨어졌다는 신박한 이야기를 하실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계속 들어오는 손님들을 받는 걸 보면 문 앞에서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오늘은 재료가 없습니다. 다음에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아직 그럴 용기는 나지 않는다. 괜히 영업방해죄로 끌려갈 것 같기도 하고 그 정도의 배짱도 없는 편이다. 돈을 내면서 밥을 먹는 와중에도 ‘다음에’라는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는데 돈을 받는 입장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과연 ‘다음에’라는 말이 얼마나 잘 지켜질지 항상 의문스럽기는 하다. 이제부터 기왕이면 ‘지금 당장’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가고 싶다. 일단, 나부터 그래야 하는 건가?
“기름 만땅으로 주세요. 지금 당장!”
미친놈 소리를 듣겠지? 아마? 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