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진 Sep 11. 2018

한강에서

9월의 이야기 일곱

지난 주말 한강에 다녀왔다. 뜨거웠던 열기는 시원한 바람에 희석됐고, 하늘은 제법 맑았다. 날씨 덕에 실로 오랜만에 찾은 한강은 여전했다. 커플부터 가족, 그리고 친구들 무리까지 마치 서울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몰려온 것처럼 붐볐다.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찾아와 맥주를 마시고, 잔디밭에 앉아 한량을 즐겼다. 이쯤이면 한강을 서울의 랜드마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배달의 민족답게 무수히 많은 오토바이들이 여의나루 역 근처 도로를 달렸다. 공원 내 신설된 ‘배달존’에는 배달꾼들과 고객들이 한데 모였다. 마치 먹이를 물어오는 어미새와 그를 기다리는 새끼들처럼. 나이,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공평하게 순서를 기다렸다. 이윽고 배달음식이 도착한 후에는 각자 챙겨 온 신문지부터 돗자리, 캠핑용 의자와 테이블까지 활용해 자리를 폈다. 도구만 다를 뿐 닭을 물고, 맥주를 삼키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누구 하나 다를 바 없었다.


어느덧 맑았던 하늘에는 주홍빛 석양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청명했던 하늘이 예뻤다면, 해가 진 뒤로는 한강 너머에 있는 건물들이 야경을 만들어냈다. 다들 말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석양을 찍고, 다시 야경을 찍으며 순간을 담았다. 해가 다 떨어지고 어둑해졌을 때 친구가 말했다. "아 저기 있는 집에 살고 싶다"라고. 한강 건너편, 그러니까 동부이촌동과 한남동이 위치한 그 자리에 있는, 매일 밤 한강과 야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살고 싶다는 얘기였다.


10년 전 한강공원에 앉아 처음 맥주를 마셨을 때 나도 그와 같은 꿈을 꾸곤 했다. '딱 10년 안에 저기 있는 집 하나 사야지'라는 원대한 소망을 가졌지만 지금 내 지갑에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전부, 직업은 백수다. 난 그에게 "못사"라고 단언했다. 매번 한강공원을 찾을 때마다 현실에 좌절했고, 꿈을 낮췄다. 여러 번 마주한 만큼 정들 법도 하지만 정은커녕 애써 외면하는 방법만 배웠다. 분위기에 취해 기분이 좋은 듯 하지만 한강 반대편만 보면 괜히 힘이 빠진다.


한강변에 앉아 바라본 반대편. 멀리서 보니 손에 닿지 않았고,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틀렸다. 멀어도, 가까워도 지금 내게는 비극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처음, 설렘과 서투름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