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텃밭 사진 기록
자연이 계절을 품었기에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있다. 텃밭을 시작하며 난 자연 안에서 계절을 탄다. 지금은 가을이란 시점에 있고 정성스레 그 시간을 기록해 보았다.
박과 동과
봄이 되었을 때, 옆집할머니께서 주신 박 모종을 심었다. 어느 여름날 하얀 박 꽃이 피더니 가을이 되선 큰 박이 열렸다. 텃밭에 자란 박을 보시곤 밭에서 꼼지락거리는 나에게 이젠 따야 할 때라 일러주신다. 그전엔 어디에 심었는지, 박이 열렸는지, 크기가 얼만한지까지 확인해 주셨다. 난 처음 키워본 커다란 박을 따서 고이 창고에 모셔두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예쁘다.
올해 심은 박 종류가 하나 더 있다. 그 이름은 동과, 동네할머님들 사이에서 인기만점이었다. 동과를 처음보신 다며 이건 이름이 뭐냐며 우리 밭을 지나는 할머님마다 물어보셨다. 처음엔 초록색이다가 자라면서 하얗게 변하는 그 비주얼이 신기하긴 하다. 그래서 옆집할머님께 내년에 모종을 드리기로 했다.
동과를 키우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친구분께서 주신 동과즙을 먹게 되면서부터다. 직접 기르신 동과로 만드신건데 맛이 좋아 키워보고 싶어서 씨를 조금 얻었다. 박 좋류는 모종 단 두 개만 심어도 잔뜩 열리니 대박이다!
나의 텃밭은 유난히 박과 식물들이 잘 자란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충분한 빛이 닿는 밭이라 그런지 열매도 실하다. 흔히 뜻밖의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우린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다고 표현하는데, 텃밭을 시작한 이후로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 아마도 텃밭을 가꾸면서 내 몸과 마음도 자연에 평온 해진듯하다. 다음 해도 박과 식물들을 잘 키워 기분 좋은 열매들을 맺고 수확하는 일을 해야겠다.
오래된 감나무
어릴 적 이 동네엔 감나무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강한 한파로 동네의 감나무가 다 죽어버리고 몇 그루만 남게 되었다. 텃밭과 할아버지집 근처에는 그때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풀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감나무 한그루가 살아남아 열매를 맺은 게 아닌가! 풀이 잔뜩인 곳이라 가는 길을 어려워 예초기를 돌리기로 했다. 풀을 베어낸 감나무로 향하는 길은 신비로운 숲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 감나무는 엄마께서 태어나시기 그 이전에도 있었던 나무라 하니 아마도 백 년 정도는 된 아주 오래된 감나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살면서도 열매를 맺을 수 있다니 놀랍다. 한참 동안이나 감나무를 바라봤다. 숲 사이를 재잘거리며 날아다니는 새들도 있다. 태양빛에 빛나는 붉은 감들이 사이사이 보인다. 올해 가을 디저트는 감이다. 새들의 달디 단 양식일 테니 적당히 따고 남겨두기로 한다.
새로운 임시 창고 <반창고>
농기구들을 얇디얇은 텐트로 대신하다 조금 더 튼튼한 창고를 짓기로 한다. 모종도 기를 수 있는 작은 비닐하우스이자, 장비들을 넣을 수 있는 창고이자, 시간이 필요한 가을 곡식들이 익어가는 저장고이기도,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작업하다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이 창고의 이름은 반창고다.
아빠의 아이디어로 지어진 이 창고의 이름은 참으로 귀엽다. 50% 정도의 창고 역할을, 50% 정도의 쉼터 역할을 하는 반창고에겐 적당한 이름이다. 확실히 날이 추워지긴 추워졌다. 작업하다 추워서 잠시 들어와 떠들고 있으니 비닐로 만들어진 창문에 김이 서린다.
가을텃밭
가을 텃밭엔 김장 채소들이 주를 이룬다. 직접 채종한 쪽마늘을 심었더니 쪽파가 자랐다. 추워진 날씨에 이른 아침엔 촉촉하게 파를 적신다. 또, 홀로 제멋대로 자란 깻잎은 조금 더 지나면 스스로 말라 들깨향을 뿜어낼 것이다. 탈탈 깻잎 터는 소리와 향에 온마을이 고소해질 예정이다. 또 씨를 뿌려둔 무는 뿌리가 커져 흙을 밀어내 무가 하얗게 모습을 보이고 여유롭였던 한랭사 안은 배추가 커져 답답해졌다. 그리고 심어둔 순무 옆엔 왠일인지 카모마일 싹이 텄다. 올 겨울 잘 월동해서 봄에는 예쁜 꽃을 피워 밭이 환해지길 바란다.
그대로 인듯해도 매 순간 달라지는 텃밭을 구경하는 건 정말 행운이다. 전생에 어떤 좋은 일을 했길래 이번 생에 이 풍경을 볼 수 있고 기록할 수 있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사진, 글 : 시골힙스터
[시골힙스터]
"태어난 곳은 시골, 내 꿈은 힙스터"
시골의 일상을 그리고 담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과 마음이 따르는 행복을 실천하는 진정한 힙스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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