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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14. 2024

'이생망' 했으니 다음에?

오늘 하루 잘 살아야 다음도 있다!

요즘 줄여 쓰는 신조어들이 많다. 젊은 사람들이 쓰는 단어들은 기발하다. 꼰대들은 알아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이생망'이란 말도 있다. 이건 신제품이 아니다. 오래전 출시된 상품이라 누구나 쓰고 이해한다.


'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인 말입니다.


'이번 생은 망했으니 포기하고 다음 생에서 폼 나게 잘 살아야겠다'는 뜻이다. 입시, 취업, 내 집 마련 등 세상살이가 만만찮은 젊은이들의 자조 섞인, 슬픈 언어다. 다음 생이란 희망이 있으니 다행이다.     


다음 생이 있다면 이전 생도 있었을 거다. 태어나고 죽고를 반복한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생망'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전생과 내생을 모두 믿는 거다.


안 좋은 일을 당하면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서..."라 하는 사람도 있고, 좋은 일이 있으면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란 말도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이 죽어도 "다음 생에는 좋은 곳에서 태어나라!" 든가, "다음 생에 다시 만나자!"며 보내는 사람도 있다.

     

종교가 어떻든, 진심이 어떻든 사람들 많이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식의 윤회를 믿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다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온다는 보장이 없다. 다음 생에 재도전의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 세상보다 더 좋은 어딘가에 가 있을 수도 있다.




'이생망'이라 하고, 또 전생에 죄를 말하고, 다음생의 만남을 기약하면서도 진심은 "죽으면 끝이지! 뭐가 있어!"라 딱 잘라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번 생, 저번 생, 다음 생은 습관의 언어일 뿐 실제 마음은 이번 생으로 종 치고 마는 거라 여긴다.

      

정말 이번 생이 '쫑'이라면 너무 억울하다. 나는 전생도 내생도 모두 믿는다. 종교에서 말하는 죽은 후 천당 극락 지옥 등을 믿고 안 믿고의 이야기가 아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냄새 맡고 생각하고 느끼고 걷고 뛰고 웃고 화내고 아프고를 수시로 하는 이 정교한 물건, 인간이 길어야 100년을 살겠다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고작 100년 살고 끝난다면 '이생망'하고 다음 생에 희망을 걸어볼 수도 없다.

     

내 몸뚱이는 없어져도 내가 생각하고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했던 것들은 어떤 형식, 예를 들면 컴퓨터 언어인 hwp, pdf, jpg, gif 등처럼, 우리가 모르는 형식으로 우주 공간 어딘가에 저장돼 우리가 모르는 다른 차원의 프로그램으로 구현될 것이라 믿는다.


어제 저장한 hwp 파일을 오늘 불러와 살고, 오늘 산 것을 jpg로 저장하면 내일은 jpg로 불러와 사는 거다. 오늘 저장해 놓은 것으로 내일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소프트웨어가 중요하지 하드웨어는 구동장치일 뿐이다. 잘 생겼다 못 생겼다 키 크다 작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생각으로 무슨 마음으로 사는가가 중요하다. 이런 리는 하드웨어가 변변찮은 나에게는 위안이다.


이승은 전생을 지나 다음 생으로 가는 영생의 한가운데를 살고 있는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잘 살든 못 살든, 부자든 가난하든, 착하든 악하든 지금 사는 이 순간은 여정의 한 점에 불과하다.


뭐, 그동안 저장한 것들이 맘에 안 들면 새문서에서 다시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삶의 흔적은 어딘가에 남아 있어 디지털 포렌식 하면 다 나오지 않을까? 염라대왕이 눈감아 주지 않는 이상, '이생망' 했으니 삭제하고 다음 생을 폼 나게 다시 시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늘 잘 살아야 그 끗발로 다음도 잘 살 수 있을 거다. 내 생각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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