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이사 온 후 풀들과 화합하고 싸우기도 하며 잘 살았는데 결국 올해 이성을 잃었다. 마당에 나는 풀을 호미로 감당할 수 없어 농약 신세를 졌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풀이 많이 나는 곳에 제초제를 뿌렸다. 며칠 후 누렇게 말라죽는 풀들을 보며 승전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런데 이것들이 장마철 비 맛을 보더니 다시 살아난다. 또 전쟁을 치러야 할 것 같다.
벌레도 그렇다. 비만 그치면 극성이다. 진딧물 때문에 고생했는데 삼 년 전부터 마당에 미국선녀벌레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과일나무나 꽃나무의 새순에 하얗게 달라붙어 고사시켜 버린다. 올해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번졌다. 이건 농약 신세를 져도 해결이 안 됐다. 없어진 듯하다 또 생겼다. 숯불 피울 때 쓰는 토치를 들고 다니며 하얀 벌레들만 보이면 화(火)생방 처방을 썼다.
화생방이 효과적인 것이 또 있다. 거미다. 거미는 크게 해롭지는 않아도 은근히 신경 쓰이고 수시로 귀찮게 한다. 가만히 두면 구석구석 지저분해진다. 모르고 지나다 보면 언제 쳐놓았는지 거미줄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걷어 내도 순식간에 또 생긴다. 추녀 밑이나 구석진 곳에 있는 거미줄은 걷어 내도 뭉치기만 할 뿐 깨끗이 없앨 수 없다.
거미줄과 씨름하다 보면 거미는 순식간에 숨어버린다. 이럴 때 토치로 화생방역을 하면 좋다. 거미줄은 불에 잘 녹는다. 깨끗하게 제거된다. 뜨거운 불기운에 숨어 있던 거미도 나온다.
사람도 그렇고 식물도 벌레도,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저 먼저 살겠다며 몸부림친다. 내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없애야 한다. 여름 마당은 늘 전쟁터고 아비규환이다.
시골서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 대부분 생명이 있는 살아 있는 것들이다. 소득용 작물, 가족의 식탁에 올리기 위해 정성 들여 키우는 채소, 보고 감상하며 행복감을 얻으려는 마당의 화초가 그렇다. 마당에 사는 고양이 애교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풀과 벌레들은 온갖 정성으로 가꾸는 작물과 화초를 호시탐탐 노린다. 싸우지 않으면 내 것들은 초토화된다. 그렇다고 매번 화생방을 펼치며 싸울 수 없다. 살아 있는 그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지, 어떻게 다스려 살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농사 경험이 많고 기술 좋은 농부들이야 알아서 잘하겠지만, 귀농·귀촌 초보자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과도한 욕심 때문인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하는 것이 ‘플랜트 호더(plant hoarder)’다. 내가 지어낸 말이다.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란 말이 있다. 동물을 좋아해 많이 기르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감당할 수 없으니 결국 동물 학대가 된다.
초보 귀농·귀촌인 중에는 기르는 재미로, 내가 기른 싱싱한 채소를 가족의 식탁에 올리겠다는 욕심으로, 예쁘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 심산으로, 많은 채소와 꽃 기르기에 도전한다. 의욕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관리를 못 해 죽이고, 추수를 못 해 밭에서 썩혀 버린다.
자신도 모르게 식물을 학대하는 플랜트 호더가 된다. 결국 무리한 노동에 지친다. 마당을 만들고 텃밭 가꾸는 일도 지겨워진다.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욕심을 내야 한다. 그래야 가꾸는 즐거움과 수확하는 재미를 얻을 수 있다. 마음 치유까지 기대할 수 있다. 다른 일을 할 여유도 생긴다. 매사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