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이가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밭을 샀다. 내가 운영하던 집짓기 프로그램에 참가하더니 창고를 하나 지었다. 벌써 20년도 더 된 얘기다.
시간도 흘렀고 관리가 잘 안 되다 보니 창고는 그야말로 먼지가 쌓인 낡은 창고가 돼 버렸다. 여기저기 곰팡이가 슬어 냄새가 나고, 시멘트 바닥은 쓸어도 쓸어도 먼지가 올라왔다.
아는 이는 창고를 이따금 들러 쉬다가는 집으로 고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고쳐야 할지도 모르고, 어설프게 손댔다가는 시간이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 이의 창고에 이따금 놀러 갔다. 그때마다 나한테 고민을 털어놓고 어떻게 좀 고쳐 쓰는 방법을 찾아달라 부탁했다. 고쳐서 같이 노는 집으로 쓰자고 했다. 내가 쓰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맘 놓고 사용하라 했다. 그 이가 그렇듯 나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집도 감당 못 하는 주제였다.
돈을 들일 수도 없었고, 손 대면 고칠 곳이 줄줄이 사탕처럼 나올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둘이 합의해 결정을 내렸다.
“자재는 자네가 사고, 노가다는 내가 하고… 좋고 완벽한 집이 아닌, 누가 와서 쉬고 놀고 일하다 가더라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만 고치세!”
그렇게 하여 방 칸막이를 하고, 바닥난방 하고, 장판도 깔았다. 허술한 창문을 보완했다. 먼지 나는 콘크리트 바닥은 에폭시로 마감했다. 외부에 새로 창고공간을 만들어 실내에 있던 잡다한 물건들을 옮겼다. 수도도 다시 묻고 정비했다. 설거지할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싱크대도 설치했다.
그러고 나니 먹고 자고 사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됐다. 이제 조명을 바꾸고 선반을 달아 모양만 내면 그럭저럭 쓸만한 공간이 될 것 같다. 화단을 만들어 꽃을 심으면 마당도 모양을 낼 것이다.
애초에 창고다 보니 현관이 초라했다. 그렇다고 값비싼 좋은 현관문을 달 것도 아니었고 새로 하면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겠다 싶었다. 주변에 있던 돌로 계단식 입구를 만들고 아무렇게나 자란 뒷산의 나무를 잘라 기존의 문 주위를 둘렀다. 그리고 한쪽에 쓰다 남은 페인트로 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것도 허전해 이마에 집 이름을 지어 붙였다.
‘放心軒(방심헌)’, ‘마음을 놓는 집’이란 뜻이다.
사람들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산다. 마음 놓으면 큰일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집에서 부모님들은,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직장에서 선배 상사들은 마음 단단히 먹고살라며 다그친다.
“방심하지 말어!” 흔히 들었고 듣는 말이다. 작업장이나 훈련장에는 무시무시한 붉은 글씨로 '방심은 금물!'이라 써놓고 기를 죽인다.방심에 주눅 들어 살고, 방심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안다.
그러니 사람들은 방심을 못한다. 마음 내려놓을 곳이 없다. 늘 무겁게 마음을 감싸 안고 들고 지고 노심초사 산다.
'방심헌'은 마음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은 이름이다. 무겁든 가볍든 거칠든 매끈하든, 어떤 마음이든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음을 내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 가장 좋은 수련법이 ‘명상’이다. 내가 경험해 보니 그렇다.
명상 방법은 수도 없이 많지만 목적은 똑같다. 나와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와 내 마음 챙기기다. 마음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챙기라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되는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
명상에서 말하는 마음 챙김이나 알아차림은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고, 그 생각들 때문에 수시로 마음이 요동치고, 내가 끌려다니는지 챙겨보라는 것이다. 챙겨보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과 마음씀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들 때문에 울화통이 터지고 슬프고 우울하고 불안해진다.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그런 마음을 놓아버리라는데 쉽지 않다. 놓겠다 하는 그 순간 놓겠다는 생각이 또 일어나 괴롭힌다. 그래서 기술적인 훈련이 필요한데 바로 명상이다. 내 마음을 챙겨보고 지켜보며 가만히 놓아두라는 것이 다. 물론 그 이상의 것들도 많지만 간단히 말하면 그렇다.
‘방심헌’은 그런 ‘명상의 집’이 되었으면 한다.
방심헌은 산중턱에 있다. 바로 앞이 충주호수다. 달려가면 바로 빠질 듯 가깝다. 지나는 사람도 없고 찾아올 사람도 없다. 집 앞 호수를 오가는 보트들만 보인다. 이따금 신나는 노래를 틀고 지나는 것들도 있지만 탄 사람도 운전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입구에 집이름을 써 붙이고 벽화를 그리던 날 너무 더웠다. 올 사람도 볼 사람도 없어 웃통을 벗고 작업을 했더니 반나절만에 뒷등이 타버렸다. 물집은 생기지 않았지만 뱀허물처럼 껍데기를 한 겹 벗었다.
햇볕에 등을 태우고 난 후 허물을 벗고 새사람이 될 때까지 괴로웠다. 등이 쓰라려 엎드려 자야 했고 등이 가려워 수시로 효자손 도움도 받았다. 일주일 정도 그러고 나니 매끄러운 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