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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May 03. 2024

먼지구덩이도 푸른산도 다 마음속

어디 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조용히 살겠다며 시골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 방송이나 신문 잡지 유튜브 등의 매체들은 귀농하거나 귀촌한 사람들의 유유자적 사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시골은 도시보다 덜 복잡하고 바쁘지도 않다. 주변의 자연환경도 좋다. 도시보다 공기도 맑다.

  

환경이 그렇다 하여 거기 사는 사람들 모두, 조용히 사색하며 조곤조곤 속삭이듯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이웃 간 다툼도 있고 신경 쓰고 챙겨야 할 것들도 많다.


들여다보면 도시생활이나 시골생활이나 부대끼고 사는 것은 다 같다.      


長短家家有(장단가가유) 炎凉處處同(염량처처동)이다. '길고 짧은 것은 어느 집이나 있고, 덥고 서늘함은 어디에서나 똑같다'란 뜻이다. '다 좋아 보이는 집안도 근심 걱정이 있고, 세상 인심은 어딜 가나 거기서 거기'란 얘기다.




백거이란 중국 당나라 때 시인이 있다.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읊은 ‘장한가’를 지어 유명한 사람이다. 여기에 '비익조(比翼鳥)'와 '연리지(連理枝)'란 말이 나온다. ‘비익조’는 날개가 하나뿐인 새 두 마리가 몸뚱이를 붙여 함께 나는 것이다. 뿌리는 두 개인 나무가 몸뚱이 하나로 합쳐진 것을 ‘연리지’라 한다. 하루도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지극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는 ‘중은’이란 시에서 세상에 조용히 숨어 사는 은자를 대은, 중은, 소은 등 세 종류로 나누어 설명한다.

     

大隱住朝市(대은주조시 / 제대로 된 은자(대은)는 조정과 시장통에 살고)

小隱入丘樊(소은입구번 / 은자인척 하는 사람(소은)들은 산속으로 들어가네)

丘樊太冷落(구번태냉락 / 산속은 고요 하나 쓸쓸하기 짝이 없고)

朝市太囂喧(조시태효훤 / 조정과 시장은 너무 소란스럽네)

不如作中隱(불여작중은 / 두 가지 모두 적당히 숨은 것(중은)만 못하니)

隱在留司官(은재유사관 / 그것은 바로 한가한 직분을 맡은 것이라)

似出復似處(사출불사처 / 출세한 것 같으면서 은거한 것 같고)

非忙亦非閑(비망역비한 / 바쁘지도 한가하지도 않다네)

不勞心與力(불로심여력 / 몸과 마음은 힘들지 않고)

又免飢與寒(우면기여한 / 굶주림과 추위도 면할 수 있고)

終歲無公事(종세무공사 / 한 해가 다 가도록 할 일은 크게 없지만)

隨月有俸錢(수월유봉전 / 달마다 녹봉은 꼬박꼬박 나온다네)     

- 중략 -     


요즘 세태에 빗대 해석하면 이런 것 같다. ‘대은(大隱, 큰 은자)’은 출세해 큰 직책을 맡았거나 사업을 해 큰돈을 번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통령실이나 중앙관청에 거나, 큰 사업을 하큰 회사 다니며 도시 한복판에서 큰 집 짓고 좋은 차 다며 잘 먹고 잘 산다. 그렇게 분주하고 복잡하게 살면서도 스트레스가 없다면 최고의 은자다. 한마디로 절대 고수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사람들과의 부대낌도 싫고 도시의 번잡함도 싫어 이것저것 다 버리고 조용히 숨어 살고 싶어 산속으로 들어갔다면 ‘소은(小隱, 작은 은자)’이다. 소인배란 얘기다.


출세해 높은 벼슬을 얻거나, 사업해 큰돈을 벌어 좋은 집에 살면 속 시끄러운 일이 많다. 반대로 시끄러운 것들을 피해 조용히 살겠다고 산속에 들어가면 너무 한가로워 답답하다. 자칫하면 굶어주기 딱 좋다. 번잡하지도 않고 답답하지 않은 것이 가장 좋은데, 그것은 크게 바쁘지 않은 직장에서 월급 받으며 사는 사람들로 바로 ‘중은(中隱)’이다. 시인은 그 쯤에서 자리잡고 사는 것이 최고라 했다.


시인 스스로의 삶이 그러했다. 조정에 들어 출세를 하고 싶었지만 높은 벼슬을 얻지 못했고, 그렇다고 과감하게 현실을 털고 산속에 들어가 은거하지도 못했다. 그런 자신의 현실을 변명한 시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백거이는 '큰 은자(대은)'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저잣거리에 아무 탈 없이 대범하게 사는 사람이고, 산속에 들어가야 맘 고요히 살 수 있는 것은 '작은 은자(소은)'라 했다. 이 둘은 너무 시끄럽거나 너무 한가하기 때문에 ‘중은(中隱)’이 가장 살기 좋다고 했다.


바쁘지 않은 직장에서 근무시간에 맞추어 일하면 매월 월급이 또박또박 나온다. 우선 먹고사는 걱정이 없다. 출근 시간 맞춰 출근하면 되고 퇴근 시간 맞춰 퇴근하면 된다. 휴일이면 쉬고 연월차 휴가도 있다. 틈틈이 취미생활도 하고 자기계발도 한다. 한마디로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좋은 사람들이다. 이런 생활이 가장 좋다. 요즘 직장인들이 바라는 최고의 삶일 것이다.





시골살이하겠다며 귀농귀촌하는 사람들 중에는 한가롭게 살 생각으로 시작한다. 할 일 없이 며칠 쉬어 보면 갑갑증이 난다. 한가롭게 농사지어 적당히 먹고 맘 편히 여유롭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귀농이지만 막상 해보면 적당히 먹고살 수 없다. 몸도 바쁘고 덩달아 맘까지 분주해진다. 생각했던 것 같지 않아 매일이 불안하다.


‘홍진벽산(紅塵碧山)’이란 말이 있다. 조선 후기의 문인이었던 유만주(兪晩周)란 선비가 자신의 일기인 '흠영(欽英)'에 쓴 말이다.


心靜則紅塵是碧山 / 심정즉홍록시벽산 (마음이 고요하면 먼지구덩이 세상도 바로 푸른 산속)

以此知心不靜則碧山亦紅塵也 / 이차지심부정즉벽산적홍진야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면 푸른 산속에 살아도 먼지구덩이나 마찬가지)

一日一年紅塵碧山 / 일일일년홍진벽산 (먼지구덩이에서 하루를 1년 같이 살아도 푸른 산속처럼 느끼면)

則便是長生久視之仙矣 즉편시장생구시지선의 (이것이야말로 장생불사의 신선놀음일 것이다.)


마음이 고요하면 '시끄러운 먼지 구덩이(紅塵, 홍진)'에 살아도 그것이 바로 '푸른 산속(碧山, 벽산)'이란 얘기다.


경치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살아도 할 일을 찾아 고민하고 땟거리를 걱정한다면, 도시의 시끄러운 시장통서 분주히 일하며 하루하루 먹고사는 고민에 벗어나 있는 것만도 못하다.


사람들은 어디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고요하게 전원생활하겠다며 청산 속에 숨어도 맘이 분주하면 먼지구덩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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