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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30. 2024

낭송의 매력에 빠지다

장난 삼아 습관적으로 너무 쉽게 글을 대했다 후회  


브런치북을 20편씩 묶으라 권장해, 그동안 연재하던 '마당개똥철학'은 똘똘  브런치북으로 발간했습니다. 다시 '마당소똥철학'으로 이름을 바꾸어 연재를 시작합니다. 요즘 시골집 마당에서도 개똥은 보입니다. 옆집 개가 와 실례를 하고 갑니다. 하지만 소똥 볼 일은 없습니다. 예전 시골마당에서는 소똥도 보였는데 지금은 축사에나 가야 볼 수 있습니다. 소똥이나 개똥이나 그게 그거라 여기시기 바랍니다. 글 그렇습니다. 개똥철학이나 소똥철학이나, 철학 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심각한 척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 편 연재를 시작합니다.




어릴 적부터 시를 끄적였다. 잡지나 신문에 글이 실리면 편지가  박스씩 오던 때다. 시를 담은 껌 종이가 있었다. 무슨 껌인지 모르겠는데 유명했다. 거기에도 시가 몇 편 실렸던 오래된 기억이 있다. 슨 내용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정작 시인으로 등단하고 활동한 것은 나이가 들어서다. 살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억지로 열심히 뭘 하려 해도 잘 안 되는 게 인생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이가 들면 이 정도의 도는 다들 트나 보다. 좀 산 사람들 많이 “인생 뭐 있어!”를 외치는 걸 보면 안다. 여전히 뭐가 있다고 열심히 찾아다니는 ‘갈 때까지 가보자 파’들도 있지만 말이다.


살아온 시간들을 아무리 복기해 봐도 '피고 지는 것이 다 내 뜻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디까지는 내 노력으로 할 수도 있다. 그것도 헛발질 안 했을 때 얘기다. 잘 못 발을 담갔다가는 열심히 하고도 국물조차 없다. 좋은 인연이 있어야 하고 운대도 맞아야 뭔가 이루어진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이 의미 있는 가르침을 남겨 놓지 않았나. "큰 일을 이루려면 시간과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고 좋은 사람도 만나야 한다"고.

     

내 맘대로 안 된다는 것을 한참 살고 그제야 깨달았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일찍 깨치고 자기 양껏 살고 있는데 말이다. ‘곤이지지(困而知之)’다. 곤경에 처해 죽기 살기를 몇 번 해 봐야 겨우 알게 되는 최하수다.


중용에 있는 말이다. 태어나면서 아는 것을 ‘생이지지(生而知之)’라 하여 최고수로 친다. 다음 순서가 배워서 아는, ‘학이지지(學而知之)’다. 가장 꼬바리가 ‘곤이지지(困而知之)’다. 논어에는 곤이지지보다 더 하수도 있다 일러 준다. 곤궁하고 위험에 처해도 배우려 하지 않는 것, ‘곤이불학(困而不學)’이다.





결국 아등바등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 하며 사는 게 답이란 생각에 이르렀다. 내가 좋아하며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시 쓰고 글 쓰는 일이다.


물론 잡문들은 꾸준히 써 책도 내고 밥벌이도 했다. 먹고살기 수단으로 내 글이 아닌 남에 글만 열심히 썼다.


시나 다른 어떤 글도 잘 쓰지 못하지만, 다른 일보다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부터 내가 좋아서 할 수 있는 일 첫손가락에 꼽은 것이다.

 

내 실력과 진정성 없는 마음가짐으로 시를 쓰고, 시인으로 사는 것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굶어 죽기 딱 좋은 선택인 것 같아 일찌감치 포기하고, 취미처럼 장난처럼 습관처럼 지금까지 해 왔다. 흔한 문학회나 동인 활동 같은 것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코피를 쏟는 투철함이나 진지함이 없었다. 맘 가는 대로 아무렇게 끄적거려 여기저기 올린다. 어디에다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도 모르고 있다 보면, 나중에 그것이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는데, 나이가 들어 다시 보니 많이 부끄럽다. 이렇게 완성도 떨어지 수준 미달의 글을 왜 올렸을까? 후회할 일이 계속 생겼다.


정보성 글들은 내용만 충실하면, 글발이 좀 딸리고 완성도가 떨어져도 넘어간다. 문학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는 다르다. 단어는 물론 토씨 하나 쉼표 마침표에도 살았다 죽었다 하고, 지옥과 천당을 오간다. 독한 마음으로 써도 될까 말까  실력으로 장난하듯 써서 여기저기 뿌려 놓았으니, 품질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계속 마음에 켕겼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장난 삼아 소일거리 삼아 습관적으로 너무 쉽게 글을 대했다. 굳이 변명하자면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고, 그다음 순서였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인데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는 늘 밀렸다.


신문이나 잡지, 사보 등에서 정식으로 원고청탁을 하면 원고료를 준다.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원고료 없이 편하게 이러이러한 글 써달라 한다. 대부분 지면보다 인터넷공간에 올리는 글들이다. 그럴 때 간혹 시를 하나씩 써주면 어떻겠냐고 내 의견을 낸다. 긴 글 쓰려면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니 부담스럽다. 대신 시는 여기저기 끄적여 놓은 것들을 골라 보내면 되겠다 싶어 머리를 굴린 것이다.

     

그렇게 써 보낸 것이 나중에 인터넷 여기저기서 보인다. 글 수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화살이 되어 돌아와 가슴에 꽂히기도 다. 아프다.


아이들 어렸을 때 문학행사, 문화축제 등에서 백일장을 열면 자주 데리고 다녔다. 상을 받으면 내신에 도움이 된다 하니, 좋은 학교 갈 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자고 운전수로 따라다녔다. 백일장에 가면 학생부만 열리기도 하지만 일반부 행사를 같이 하는 곳들도 많다. 기다리기 심심해 일반부에 끼어 한 편씩 써 놓고 나온다. 나중에 상 받으러 오라 한다. 상장 하나 주고 마는 경우도 있지만, 상금을 주는 곳도 있다. 기름값 벌었다며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생각만 했다.

     

짐 정리하다 보면 상장은 보이는데 무슨 내용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뭘 받았는지 잿밥만 어렴풋하다.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어떤 마을을 지나는 길인데 지역을 대표하는 큰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문학제 행사도 같이 하고 있었다. 전국 백일장이란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어 참가해 한 편 쓰고 나왔다. 며칠 후 상 받으러 오라 해, 거리가 좀 돼 망설이다 갔다.


식당에서 하는 상식 행사였는데 상을 주며 장원한 시를 낭송가가 낭송을 했다. 장원은 아니지만 내 것도 낭송해 달라며 공개 신청을 했다. 엄숙하던 행사장에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난 농담 삼아한 얘기인데 낭송가 분은 냉랭한 표정으로 못 하겠다 했다. 단칼에 잘라내는 수에 잠시 머쓱했다.


꼭 들어야겠다는 것보다 내심 장원한 거나 내 시나 거기서 거기란 치기가 있었던 것 같다. 진지하지도 않고 완성도도 떨어지는 걸로 치기를 부린 것이다. 부끄럽다.


낭송에 대한 평소의 생각도 그랬다. 문학은 글을 눈으로 읽어 감상하는 것인데, 음성을 입혀 귀로 감상하는 것은 왠지 왜곡하는 것 같았다.


낭송에 대한 부정적인 장면은 또 있다. 어떤 문학행사에 간 적이 있었는데 남녀 낭송가란 분들이 극장식 쇼 하듯 낭송하는데 너무 유치했다. 내가 다 부끄러웠다.


이 두 장면이 낭송에 대한 나의 이미지였다.





그만큼 글에 대한 진지함도 없었고, 문인들의 행사장의 낭송 분위기조차 익숙하지 않던, 변방의 글쟁이가 몸을 추슬렀다. 제대로 글 한번 써야지 맘 먹고 시인으로 등단부터 했다.


등단이 별 건가 했는데 어울려 보려니, 잘 쓰고 못 쓰고, 상 받고 못 받고 한 것은 쳐주지도 않고 등단부터 따진다. 백일장에 나가  상 받는 게 더 어려운데 쳐주지도 않는다. 하긴 상도 자기들끼리 주고받고 하는 것들이 많다고 하니...


그렇게 하여 거지 등단을 하고, 글 쓰는 사람들 모임에도 나가보고 어울려보았지만 영 신통치도 마땅치도 않다. 남에 옷을 걸친 듯 불편하다.


혼자 노는 것이 훨씬 낫고 맘 편하겠다로 방향을 정하고, 그 시간에 여기저기 대충 뿌려놓아 마음이 계속 켕기는 글들이나 정리하기로 했다. 보이는 대로 내가 쓴 글들을 긁어 컴퓨터에 저장했는데, 파일이 여러 개 생기다 보니 많이 헷갈렸다.


개과천선 하여 좀 진지해질 것을 다짐하고 시작한 일인데 점점 더 뒤죽박죽으로 꼬인다. 맘 잡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도 슬슬 꾀가 난다. "둔다고 큰 탈 나는 것도 아닌데 이대로 살지 뭐" 하는 도돌이표 생각도 든다.


그러다 만난 것이 브런치스토리다. 론칭하고 얼마 안 돼 글 몇 개 올리다 중단한 채 잊고 있었는데, 다시 만나 보니 많이 커져 있다. 기능도 좋아졌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글들을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올려보니 아주 좋다. 글을 모아 따로 책을 만들 수 있어 더 좋다. 정리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구독자 욕심도 이따금 생긴다. 욕심을 버려! 마음을 잡는다.

     

브런치에 올린 시 중 몇 편을 골라 낭송해 주신 분도 생겼다. 낭송가이신 유순애 님이 내가 쓴 시를 낭송해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가끔 올린다. 유명 시인들 사이에 자리를 만들어 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낭송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낭송하시는 분들도 계시다는 정도의 앎이었다. 앞서 말한 이러저러한 이유도 있고 , 텍스트가 진면목인 문학작품을 굳이 음성으로 들어 평가할 필요가 있나 하는 고리타분한 생각이 컸다. 그런데 요즘 푹 빠졌다.


낭송하는 분의 목소리와 감성이 너무 좋아, 내가 쓴 시지만 듣다 울컥할 때가 있다. 그래서 자주 꺼낸다. 스스로에게 위로가 많이 된다.


낭송도, 낭송하기 나름이란 것을 알았다. 낭송하시는 분들도 다 똑같지 않고 실력이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낭송의 매력이고 힘인가 보다.


브런치에 올린 시 중 낭송이 있는 것들을 모아보았다. 한번 들어보시고 낭송의 매력에 빠져보시길…



[낭송 시 듣기]


https://brunch.co.kr/@sigolpyenji/24


https://brunch.co.kr/@sigolpyenji/82


https://brunch.co.kr/@sigolpyenji/111


https://brunch.co.kr/@sigolpyenji/127


https://brunch.co.kr/@sigolpyenji/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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