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겨울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위로의 바닷가 향하는 나는 봄날입니다.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느낄 때 오직 나만을 위해 열려있는 바다는 위로가 되는 곳입니다. 크림반도 페오도시야 출신 화가 ‘이반 아이바좁스키’는 평생 바다를 그린 이유가 낭만주의 시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낭만적이지 않지만 낭만적이고 싶은 나는 ‘이반 아이바좁스키’의 작품들을 볼 때마다 바닷가에 와 있었습니다.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그리운 친구처럼 바다는 설렘이고 나만의 안식처입니다.
‘울산 큰 애기 노래비’를 뒤로 잔디 광장 지나 사진 찍기 좋은 하트 포토 존. 연인과 친구와 서로의 색깔을 버무리고 있습니다. 리사이클로 만들어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컨셉의 작품들 풍차조형물을 지키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사부작사부작 걸어봅니다. 푸른 단어들이 다른 꿈으로 가기 위해 휘어진 데크 길에 아무도 꺼낼 수 없는 비밀 한 가닥 깔아놓았습니다. 파도소리 관객으로 앉아 풍경을 더듬고 있는지 자꾸 철썩거립니다.
몸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색과 몸이 읽지 못하는 기분은 혼자 불타다 고개 돌린 연애 같아서 잠시 멈추고, 몸 밖의 이름을 갖지 못한 무궁한 것들 툭툭 잘라 바다에 던지며 소망우체통까지 왔습니다.
그대에 전하고 싶은 몸 안의 사건은 어떤 시선을 갖는 걸까요. 내게 온 시간 접어 우체통에 넣고 그대를 안 듯 우체통을 껴안아봅니다. 바람이 살포시 지나갑니다. 마치 그대가 스쳐가는 듯합니다.
높이 17미터의 백색 팔각형 기둥에 십각형 지붕을 올린 간절 곶 등대는 1920년 3월 26일 처음 불빛을 밝힌 이래 100여 년을 울산항 뱃길을 인도해오고 있으며 "2000년 1월 1일 오전 7시 31분 26초" 새천년의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른 간절곶에 있는 등대로 유명해졌다 합니다.
먼바다에서 바라보면 과일을 따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뾰족하고 긴 장대를 가리키는 간짓대처럼 보인다는 간절과 육지가 바다로 돌출해 있는 부분의 곶인 간절곶. 목마름을 재우기 위해 ‘카리브 레스토랑’ 창가에 앉아 봅니다. 바다가 풀어놓고 간 비릿한 낱말들 입 안 가득 출렁입니다.
유리창 너머로 일렁이는 파랑(波浪)에서 카페 탁자 위 딸기 주스 잔의 출렁거림까지 간절함과 간절곶의 음은 같지만 다른 뜻을 갖는 단어처럼 닮은 부분 없듯 그대와 닿지 않은 날들. 흔들리고 기울어진 수평선을 찍은 사진처럼 삐뚤거리는 감정선 바로잡아주는 바다는, 간절곶 표지석 뒤에 숨은 웃음을 꺼내주는 바다는, 너무 두터워서 읽기 힘들지만 바라만 봐도 위로가 되는 백과사전입니다. 눈 시리도록 바라보다 바다사전 첫 페이지에 오늘을 서명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