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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Aug 05. 2023

동굴 안의 점심식사

-몽골 차강소브르가

 바람의 길 따라 광활하지만 메마른 초원을 달립니다. 창문을 열면 투명한 하늘 뭉게구름 웅크렸다 펴고, 숨을 크게 들이쉴 때마다 한없이 부풀어 오르기도 하며 하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귀가 열리지 않아 눈으로 듣는 구름의 사생활은 다양하기도 합니다. 그 많은 서술을 풀어낼 때마다 우리는 감탄사로 응답하였지요.  

    

칭기즈칸 신공항에서부터 따라온 햄버거가 만달고비 입구 오워의 깃발과 함께 바람에 휘날립니다. 파랑은 하늘, 초록은 자연, 하양은 신성함, 빨강은 고귀함, 노랑은 높은 지위를 상징한다지요. 오워에 꽂아진 파란 깃발은 우리들 여행이 안전하기를 기원하는 주술을 바람이 대신하는지 힘차게도 웃어댑니다.         


버려진 외투처럼 펄럭이는 깃발에 흔들리고 흔들린 뒤에야 공중을 어루만지는 고요가 찾아올까. 모든 것이 바람의 경전이고 바람의 목회이자 바람의 영역인지라 바람에게 넘기며, 깨지고 갈라지고 움푹 파인 고속도로 공중부양 하는 놀이기구에 매달리듯 초원을 달리는 오후입니다.    

  


도로와 초원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몽골에서는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정비되지 않은 고속도로에 통행료를 부과할 수 없다는 기사의 기발한 발상은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는 몽골이니까요. 그러나 잘 닦아 놓은 고속도로에서는 놀이기구를 타지 않아 통행료를 지불하고 모두의 길로 갑니다.        


초록 도화지 속에 바퀴가 두 줄 긋고 가는 몽골의 길. 어디쯤에서는 대지의 표면이 벗겨진 비늘처럼 흐르기도 합니다. 지평선 끝 부옇게 번지는 흙먼지 다 안아줄 바다가 보인다고 한 사람이 말합니다. 햇살이 요술을 부리는 아지랑이라며 한 사람이 거들지만, 광활한 대평원 그 너머의 넘어가 반복되는 아무리 달려도 닿을 수 없는 그곳. 지평선의 시작이자 끝은 신기루입니다. 저 너머에 닿으면 또 다른 바다가 아롱거리고 있으니까요.    

     

돈도 고비. 붉은 창문들 저무는 사막 허허벌판에 덩그렇게 세워진 ‘고비 카라반 세라이’는 네이버 지도에도 없는 리조트입니다. 이쪽은 중동의 건축물이 저쪽에는 몽골의 게르가 사막을 지키고 대평원을 휩쓸다 온 여행자가 노크하면 졸린 눈 받아주는 곳.      


우리는 중동의 건축물 침대 하얀 시트에 붉은 흙먼지 찬란하게 부서지는, 태양열에 달구어진 무더위 선풍기 에어컨도 없이 사막의 벌레와 함께 동침합니다. 붉은 흙과 벌레도 힘찬 노숙은 졸업하고 싶나 봅니다.

     


‘몽골에 별 보러 갑니다.’ 나의 여행 수첩 은하수와 별똥별 쏟아지는 밤이 사라졌어요.


몽골에서 별이 잘 보이는 이유가 불빛이 없고 지대가 높아 공기 중에 부유물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달빛이 너무 강해서 은하수 길 차단해 가끔씩 떨어지는 별똥별에게 악수를 청하지만 그 또한 순간입니다. 별똥별이 주는 찰나가 인간의 삶이자 역사이기 때문에 밤의 생각들이 뭉그적거리며 잠을 설치게 합니다.    

  

더위를 피해 현지인만 알고 갈 수 있는 동굴 안에서 점심 만찬이 차려집니다. 함께 온 어린 친구 엘리사는 동굴의 개념을 몰라 구멍에서 밥 먹은 추억의 액자를 꾸미고, 오빠의 한국이름을 묻자 ‘오빠’ 하고 대답하는 꼬마친구 도현오빠는 이구아나 꼬리를 잡고 해맑게 웃으며 어린 날의 한 페이지를 사진첩에 담아냅니다.


 모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연상케 하는 아주 특별한 장소에서 우리들만의 점심식사였지요.  그대들의 러그이기도 합니다. 사생활 보호로 사진은 올릴 수 없으니 상상의 스케치를 해보세요.



2억 년 전 바다였지만 해저 퇴적층이 융기·풍화돼 생성된 석회암 지형으로 ‘화이트 스투파’로 불리는 차강소브라가는 몽골의 그랜드 캐년입니다. 절벽 아래서 바라보는 일몰과 절벽 위에서 맞이하는 일몰이 주는 의미의 차이는 다를까요.


그저 감상하기 좋은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60m 높이 협곡은 쉽게 몸을 열지 않습니다. 바람이 전해준 모래 두발이 푹푹 빠지면 손끝으로 모래의 지문들을 털어내고 어깨 둥글게 말아가며 올라서니 사방이 들뜬 색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서쪽으로 밀려난 해와 동쪽의 달이 환해지고 있습니다. 황량한 벌판에 덩그러니 세워진 비석에는 ‘차강소브라가’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고 인근지역이 몇 km인 표시되어 있습니다. 길을 잃을 까봐 세워진 이정표인 듯합니다.      


사진-최수희님
사진 - 성성남님
사진 - 최수희님


고생대의 바다였을 절벽 위 자갈밭에 앉아 소리도 내지 않고 조금씩 어둔 빛으로 가는 차강소브라가의 일몰 속으로 빨려갑니다. 어디가 끝인지 몰라 꼼짝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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