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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Jan 11. 2024

날마다 봄의 도시

-달랏


  세레자 호텔 아침정원이 영희와 나를 초대합니다. 봄의 도시답게 연두와 초록이 어우러지고 붉은 꽃들과 와인 향으로 스미는 상쾌한 공기는 기분을 말랑말랑하게 하며, 오랫동안 머물고 싶을 만큼 달콤합니다.      


  나트랑 담 시장에서 구입했다는 단체복 입고 정원을 누비며 사진 찍는 2조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어쩜 그 많은 색깔을 제치고 흰색 바탕에 듬성듬성 초록이 덧칠해진 단체복일까요. 호텔의 하얀 건물과 어우러져 사진 찍는 풍경은 꼭 요양병동을 환자복 입고 탈출한 환자들 같아요.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생각나게 하는 아침입니다. 탈출한 환자들 찍어주며 한 마디씩 뚝 던지는 정애의 유머에 호텔 투숙객들 가던 길 멈추게도 합니다. 지금의 기분을 즐기고들 있습니다. 여행이 주는 여유는 순간이 주는 즐거움도 함께인 듯합니다.    

   

  


 루지 타고 다딴라 폭포 가는 길. 숲 속 나무들을 가르며 신나게 달립니다. 급 하강 부분에서 함성이 울립니다. 두려움일까 가슴속까지 퍼지는 시원함일까 재미와 무서움이 겹쳐진 함성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까지 풀어주는 특효약이 되겠지요. 울창한 소나무와 대나무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스러운 폭포는 선녀들이 목욕 중에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주변 나뭇잎들을 물 위에 뿌렸다고 하며, 폭포를 발견했을 때 소수민족들은 그것을 '물이 있는 잎사귀 아래'라는 뜻의 '다땀느느하'라 이름이 붙여졌고 '다딴라'로 변했답니다.

     

  

죽림사원

  


  일본식과 베트남 불교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로 '선'을 교육하는 소승불교의 도량 같은 죽림사원은 분재들의 전시장입니다. 쭉 뻗지 못하고 구부러지고 꼬아진 나무들이 아픔을 호소하는 것 같아 아름답다가 아닌 고통스럽겠다가 어울리는 듯합니다. 만들어진다는 것. 다듬어진다는 것. 보여주기 이전 무엇인가 가둬두기 위한 상자 속 어둠 같아서 오래 머물 수 없어 케이블카 타고 랑비엔 전망대 갑니다.       

 

  랑비엔 산은 베트남 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랑'과 '비엔'의 애절한 전설이 있는 정상입니다. 구름위의 정원을 상상해 보세요. 파란 도화지 위 하얀 뭉게구름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로 달랏 시내 전경이 펼쳐집니다. 베트남 전쟁 시 사용되었다는 지프차를 배경으로 혹은 전시된 기차며 조형물들 사이 관광객들 여기저기서 멜로영화에서 액션영화까지 찍고 있습니다. 포즈도 표정도 다양하고 진지한 모습들이 배우들보다 더 배우 같습니다.  

   


  ‘봄의 향기’란 뜻을 가진 쓰엉흐엉호수 마차 투어 합니다. 동물학대에 일조를 하였지만 말발굽 장단소리 어우러진 시간입니다. 호수에 떠다니는 구름과 산책하는 달랏 시민들 공원 주변 환하게 웃고 있는 꽃들에서 마음까지 환해집니다.     

          

많이 달리기도 하였죠    

 

풀벌레의 수많은 다리보다도 두려운 것 없이 달렸던 초원을 이제는 영영 만나지 못할 거예요.  

   

관광객들과 실컷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마차 좌석에 두고 내린 사람들의 흔적을 지워요.     

 

이것저것 호기심은 많지만 누군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는 두려움 때문에 망설임 없이 지우다 그만 누군가 흘리고 간 머리카락 한 올 삼키고 말았어요. 건초대신 내 안으로 들어온 건 처음이라 여러 복잡한 생각들이 엉켜버렸어요.     

  

초원 없는 이곳에서 싱싱한 풀 대신 내가 삼킨 머리카락 한 올 나의 고백이 될까요. 인공사료의 삶이 우울하다고 몽골초원으로 달리고 싶다는 용기는 전달되지 않아요. 쓰엉흐엉호수를 끼고 딸그락거리는 말발굽소리로 나를 위로하고 있어요. 각설탕 한 조각도 오래도록 씹고 있는 나를 마부는 정녕 몰라서 저럴까요. 전해지지 않는 고백을 나는 매번 혼자 펴고 접어요.      


나는 대비해 둔 거 없고 나 대신 대비해 줄 마부도 없어요. 초원을 향해 달리고 싶은 마음에 별별 소란을 피워보고 엄살도 떨어보고 별 걸 다 했는데 돌아오는 건 채찍질 이에요. 우리 인연일까요 악연일까요. 고백해서 초원으로 갈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용기를 내겠죠. 꿈이 된다면.

                                                   -「마차의 고백」     



쓰엉흐엉호수




  

  여행사에서 선물로 준 레드와인과 테라스에 다시 모인 1조와 2조의 건배는 사뭇 진지합니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고, 누군가는 와인을 음미하듯 유리잔에 와인과 낭송 시를 담아 마시고 누군가는 만남의 줄기를 엮어가며 그렇게 달랏의 밤을 즐기고 있습니다. 누군가 중의 한 사람 나는, 시란 무엇일까. 시를 쓰고 있지만 아직도 시가 무엇이지 잘 몰라 글밭을 방황하고 있는 나를 만나고 있습니다.   

   

  매일 해는 뜨고 집니다. 뜨고 지는 해 따라 우리는 매일을 살고 그 매일 속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어딘가로 탈출하고 싶은 그 어딘가가 모두 다를 수 있지만 일상을 탈출하고 싶거나 잠시 쉼이 필요할 때 혹은 떠남을 좋아하는 사람은 가장 큰 탈출구가 여행일 것입니다. 나 또한 세상의 모든 골목이 궁금하여 가끔씩 떠도는 방랑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떠돌다 보면 만남도 이렇게 예고편 없이 시작되기도 하지요.                 

달랏 기차역
크레이지하우스
달랏의 야경
메모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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