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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Jan 03. 2024

두 번은 없다*

-나트랑, 달랏


  몇 년 전 계단에서 온몸으로 데굴데굴. 계단은 끝이자 시작이었고 시작이자 끝이었습니다. 굴렀을 때 허공에 솟았던 깁스한 왼발의 후유증으로 한의원 치료 중인데 친구 영희가 베트남 여행을 권합니다. 망설이는 나를 아들은 “민재 씨 걸을 수 있을 때, 기회가 주어질 때 움켜쥘 수 있는 것도 용기 아니겠어.”    


 우린 처음의 삶을 살다 처음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시작과 끝이 처음인 지금,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카의 시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두 번은 없다」의 일부를 생각하며 모든 여행은 건강할 때 그대가 놓고 간 아쉬움까지 함께 끌고 가는 것.     

 


 떠나야 돌아올 수 있는 여행은 언제나 풋사과처럼 싱싱하게 혹은 첫사랑처럼 여행자들을 가슴 뛰게 합니다. 공항에서의 첫 만남이 그랬습니다. 향숙님 정애님 경숙님 인숙님 친구와 나 그렇게 여섯은 냐짱 깜란 공항입니다.       


 막막함과 아득함의 경계는 어디쯤 헤매다 돌아올까요.      


 입국심사 중 일행인 p가 사색이 되어 여권 분실을 알립니다.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길게 들어선 수십 명의 눈동자들 사이로 우리 일행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있습니다. 손가방 아무리 뒤집어도 먼지만 휘날릴 뿐 여권은 보이지 않고 떨리는 손끝과 쿵쾅거리는 심장 뛰는 소리에 머리속만 바쁩니다. 레코드판 돌리듯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도 오리무중인 여권의 행방에 아득하고 막막할 뿐입니다.      


 한 달 전 치앙마이 국제공항에서 출국심사를 마친 뒤 면세점 기웃거리다 핸드폰 분실을 알았던 나의 모습이 겹칩니다. 핸드폰과 친하지 않은 내 습관이 준 경고였지요. 두 아들의 훈계는 거창하였고 나는 하양과 깜장이 머릿속 휘몰아치고 가슴이 펌프질해대던 그때의 기억이 가 되살아납니다. 그러나 p의 지금은 나보다 더 절박합니다. 해외에서 여권분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묶인 발목입니다. 이 순간만은 뒤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비행기 착륙 후 손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다 좌석 바닥으로 여권이 탈출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나왔나 봅니다. 좌석 아래 여권은 간장항아리 속처럼 마음을 어둡게 틀러 놓은 뒤 p에게로 왔답니다. 천만다행이란 사자성어는 이럴 때 쓰나 봅니다.  

          

 

 

 냐짱은 8세기에 참파 왕국의 수도로 번성을 이루었던 곳으로 19세기말 프랑스 식민시기에 유럽인들에 의해 휴양지로 개발한 도시입니다. 냐짱 호라이즌 호텔 앞 도심과 인접한 곳 6km가량 펼쳐진 백사장을 따라서 베트남 최고의 휴양지 해변 길 기념사진 남깁니다. 야자수 바다와 하늘과 어우러진 산책길 오토바이 경적에 파도는 장단 맞춰주고 있습니다. 옹기종기 어깨동무하고 있는 상점들 사이 오늘의 피로를 풀기 위해 나란히 누워 발 마사지받습니다. 정애의 유머러스함이 배꼽까지 웃게 만드는 순발력에 감탄하며, 우리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한 향숙의 선물로 밤이 깊어갑니다.      

    



  


 먹구름 사이로 솟는 일출 장관을 이루는 해변은 부산스럽습니다. 보도블록 길을 막고 가락에 맞춰 조기체조 율동에 수런수런. 우리나라 이른 아침 천변공원 에어로빅 체조와 다를 게 없는 풍경입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영희와 나는 썰물 따라갑니다. 바닷물이 차갑습니다. 중력의 힘에 빨려드는 듯 물속 중심 잡고 서있지만 모든 사물들이 빙빙 돌고 어지러워 얼른 나오고 맙니다.    

  

 참파 왕궁시절에 지어진 오래된 힌두교 사원 포나가르입니다. 힌두교의 시바신 부인 포나가르 여신은 풍요로운 수확과 생명의 잉태 평화를 창조하는 신입니다. 인도의 영향을 받은 말레이계 참파 족은 베트남 남부에서 중부로 북진하고 국가를 형성하여 강력한 군대로 1600년을 넘은 역사를 지녔습니다. 참파 족이 멸망하기 전까지 힌두교는 참족의 종교였지만 국가가 멸망하고 베트남의 소수민족 중 하나가 된 뒤 현재는 대부분 이슬람교입니다.* 『동남아시아사』, 소병국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생각나게 하는 사원과 참족들. 힘없는 나라의 유적에서 슬픔이 묻어납니다.  

    

포나가르 사원

 


 담 전통시장 이후 냐짱에서 달랏으로 가는 버스는 구불구불 산을 넘나 봅니다. 비몽사몽 아니 잠에 취에 모든 풍경은 삭제됩니다. 말 걸지 마세요. 어젯밤 한숨도 안 잤어요. 천장에 침대시트 위와 별빛 하늘에 영희와 발표될 수 없는 비매품 이야기책 한 권을 썼거든요. 별책부록으로는 여행 끝나면 써볼까 생각 중입니다.

     

 라틴어로 즐거움과 신선함을 준다는 뜻을 가진 달랏은 약 1500m의 고산지대로 17세기 참족 등 소수민족들이 사는 촌락에 프랑스 식민화 과정에서 휴양도시로 건립한 계획도시답게 건물들 상당수가 유럽풍 건축물입니다.       


 패기지 여행 상품 중 마사지는 바늘과 실입니다. 그런 바늘에 실을 꿰지 못한 나는 샵 주변을 탐색합니다. 어제 발마사지 이후 다리 주변 붉은 반점들 때문이지요. 퇴근하는 오토바이 줄을 잇고, 야채가게 주인의 바쁜 손이 저녁노을에 빛나고, 골목을 이루고 있는 담장의 노란 히비스커스 손짓합니다. 그 길 따라 강아지와 나는 한 통속이 되어 동네 구석 염탐 중 너무 밋밋해서 돌아오고 맙니다.      


달랏 야시장


 1조와 2조가 뭉쳤습니다. 3조는 섞이지 못하는 물 위에 뜬 기름인 듯합니다. 조금 전 달랏 야시장에서 사 온 망고의 달콤함으로 오늘을 기록합니다. 떠나옴에 만남에 일상 탈출에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에 인연의 고리는 예측하지 않은 곳에서부터 오는 듯합니다. 1조 친구들도 어제 공항에서의 첫 만남처럼.  


*비스와바 쉼보르카의 시 제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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