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세화 해변, 세화 씨 만나러 가다

--제주, 그리고 일주일

by 김민재

여행은 내가 머문 그곳을 뒤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오랫동안 가슴 뛰게 한다. 생활이 벅차고 지치고 먹먹하고 아득하고 그래서 한 번쯤 뒤돌아보고 싶어 질 때 꺼낼 수 있는, 여행의 추억으로 혼자 미소 짓게 하고 행복해하고 또 떠나고 싶다는 욕망과 떠나야지 하는 희망을 품을 수 있어 삶이 즐거워질 수 있다면 과감하게 떠나라 말하고 싶다.


월요일 박물관 쉬는 날 아쉬움이 남지만 해녀박물관을 뒤로하고 올레 20코스를 거꾸로 간다. 세화리-평대리-월정리 코스다. 삼양초등학교 정류장에 웅크리고 앉아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정류장에 뿌려진 아까운 내 오전 시간. 면허증이 없어 늘 뚜벅이 아님 대중교통과의 만남은 여유라는 이름을 달고 가끔은 지루한 기다림을 준다. 특히 오늘처럼 일찍 파장하는 장소를 갈 때.


파장 준비에 바쁜 바다가 보이는 세화 민속오일장(5일, 10일). 점심시간을 갓 넘은 것 같은데 벌써 빈자리도 보이고 여기저기서 봇짐을 챙기고 있다. 어릴 적 엄마 따라 고창 오일장날(3일, 8일) 좌판에 쪼그리고 앉아 팥죽 먹던 그 풍경은 없어도, 아기자기한 보따리들이 웅성웅성 이야기를 품어내고 있다. 겨자 빛 스카프 하나 오천 원의 만족을 사서 행복을 두르고 세화 씨 만나러 간다. 해안도로 따라 습하고 소금기 날리는 길을 걷는다. 푸른 바다가 눈 안으로 가득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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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세화 씨와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있나요’ 카페 유리창에 박힌 문구다. 카페 내부 창문 위로 캘리그래피로 테이핑을 해놓은 포토 존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곳. 방파제 위 의자에 앉아 찰칵은 기본. 커피를 안 마셔도 포토 존은 덤, 카페 한 켠 아트마켓은 옵션. ‘카페 공작소’, ‘안녕, 세화 씨’, ‘미 엘드 세화’ 등등. 종이비행기 얹은 지붕의 카페가 인상적인 카페거리를 지난다. ‘쉬멍’ 카페에서 삼각형으로 생각을 세우다 한라봉 주스 한잔. 눈빛은 멀리 두고 손끝은 바다를 잡고 걷던 길가 미역과 톳을 말리던 제주 어멍의 다정한 안내. “덥지요. 저기 용천수에 들어가 시원하게 발 담그고 쉬었다 가요.” “감사합니다.” 내 발바닥 노고를 위로해주던 용천수. 물 빠진 바다로 들어가 용천수의 짜릿한 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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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오후



낯선 그대 곁 대신 걷는다

동전 지갑엔 생수 한 병과

숙소로 돌아올 교통비가 있는 길

폭염을 이고 온 한낮 혼자서도 충분하다

습한 공기 쪼개며 굳이 눅눅한 시간 서두를 필요도 없다

구좌풍력발전기 바람을 끌어안고

아픔 없는 사람들의 하루를 리필해서 마시듯

발전기 날개처럼 돌아가는 나는 슬프지 않다

올레길 등 뒤로 사라지며 발자국이 불안을 깨운다

잠시 잘못 들어간 마을

골목마다 번지수가 지워진

붉은 꽃 열매 쉼표도 없이 매달려

걷는 이유를 묻는다

해변은 환해서

숨고 싶은 골목 모퉁이를 찾는 거라고 했다

버릴 것이 너무 많아 버리지 못한다고 했다

지우고 싶은 것들이 지워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나에게로 가는 길과 나에게서 돌아오는 길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깨진 질문으로 튀어나오는 붉은 꽃 열매에

무성의한 내 답변이 해변의 노을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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