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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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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Jul 03. 2020

무진, 보이지 않는 도시

-순천 1박 2일

  쿠바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자란 이탈로 칼비노는 도시에서 찾아내고 싶었던 이미지와 특성들을 마르코 폴로와 쿠빌라이 칸의 대화 속에만 존재하는『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담았다.

    

세속적인 삶과 현실을 벗어나려는 고립된 개인의 복잡한 심리를 가상의 도시로 설정한 『무진기행』의 김승옥은 오사카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자랐다. 비슷비슷한 출생과 성장, 그리고 작품까지 보이지 않는 도시와 안개 도시를 그려낸 두 작가의 우연을 끌어내 본다.   

  

“형상이나 형식이 없는 도시를 머릿속에 간직하게 된다.”는 시공간속의 보이지 않는 도시, “안개로 인해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는 안개속 보이지 않는 도시, 

그 곳, 

   

 철로 위로 화요일이 달린다. 화요일은 안개로 광활하다. 철로가 안개를 거둬들일 때쯤 순천 역 바람은 선선했고 햇볕은 따가웠다. 캐리어 바퀴소리가 달그락거렸다. 한낮을 힐끔거리다 낙안읍성 군내 버스를 탔다. 

   


낙안읍성은 3.1절 독립기념탑 뒤로 2022년 세계문화유산 등재기원 장승과 솟대들이 열 지어 반기는 화요일이 성벽을 넘는다.      


동문인 옹성과 치성으로 어우러진 낙풍루 들어서니 확 트인 길 담쟁이 넝쿨 따라 ‘오태석 명창생가’ 붉은 앵두 치렁치렁 가야금소리로 익어간다. 맛보라는 듯 장독대에 펼쳐진 오디 검붉었다. 오디 대신 어린소녀의 가야금 선율에 걸린 내 귀는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객사 지나니 낙민루가 고혹적이었다. 남원 광한루, 순천 연자루는 조선시대 호남의 대표 누각이다. 6.25전쟁 때 소실되어 지금은 복원된 보습으로 단청이 주변의 모든 색을 물들이는 듯했다. 동헌과 내아를 지나 낙민관 자료전시실 낙안읍성 역사이자 선조들이 살아온 유물유적은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서문(낙추문)은 아직 복원되지 않아 누각이 없었다. 돌계단 타박타박 성벽 오르니 고요가 소요를 부르지만 오후를 끌고 가는 성벽 길에 바람만 질척거렸다. 발아래 펼쳐진 송이버섯처럼 엮인 초가지붕 구름의 말들을 엿듣는 듯 그대로 다정이다. 사이사이로 삐쭉거리는 붉은 석류꽃은 유리컵에 매달린 투명한 물방울 같아 살짝 튕겨본다.     


남문(쌍청루)에서 살포시 뒷길로 새면 손잡을 수 있는 각양각색 도자기들 부재중인 주인 대신 처마 아래 흙벽 층층이 버티고 있었다. 곡선에서 직선으로 구부러진 마음 펴듯 마을 고샅길 걷다보면 불쑥불쑥 나타나는 담장너머 천연염색 빨래 줄에서 줄다리기 하고, 고을 수령이 마셨다는 우물(큰샘) 물을 마시면 성품이 착해져 미인이 된다는 전설을 뒤로 하고 대장금 촬영장 사진 속 장금이와 함께 내 미소 한 줌 고삿에 꽂아 본다.    

  

고창읍성, 해미읍성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읍성인 낙안읍성은 조선시대부터 6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조선시대의 계획도시답게 깔끔하게 정돈된 민속마을이었다. 조상들 숨결이 느껴지는 곳을 나와 성벽 아래 잡풀 끼고 걸었다.     

 *고삿: 초가집의 지붕을 일 때 쓰는 새끼  

     

낙민관 자료전시실



순천만 국가정원 약 34만평이 되는 세계정원이며 테마정원이다. “여행자는 자신이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가질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발견함으로써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칼비노의 말을 되새기게 했다.   

   

출출한 내 눈이 꽃길을 향한다. 꽃과 나무 색들이 내 눈의 곳간에 차곡차곡 쌓인다. 각 나라마다 제 모습 뽐내고 있는 정원들 한발 한발 걷는 길마다 햇빛가루에 반짝인다.      


영국의 찰스 젱스가 디자인한 호수정원 봉화 언덕에 앉아 바라보는 정원 풍광은 그대로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소설이 되는 듯했다.      


물 위에 떠 있는 미술관 꿈의 다리 건너 드라마 촬영장 금계국 아글타글* 살았던 나를 나무라듯 노랗게 부서진다. 6, 70년대 달동네의 고달팠던 삶이 묻은 녹슨 드럼통이 생각을 끌고 간다.   

  

영원을 약속해 보라는 언약의 집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별똥별이 떠오른다. 찰나의 영원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한순간의 빛과 영원의 상관관계에서 보면 잃거나 잃을 수 있는 그 무엇도 없는 풋사랑과 별똥별도 그런 것이리.     


구멍가게에서 산 추억의 꽈배기와 핫도그 아작거리며 막힌 감정의 출구를 나왔다.      

      

*고삿: 초가집의 지붕을 일 때 쓰는 새끼  

*아글타글: 무엇을 이루려고 몹시 애쓰거나 기를 쓰고 달라붙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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