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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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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Dec 01. 2020

장미는 철없이 피지 않는다

-왕송호수


고흐 명화 <해바라기>를 감상하면서 영화 <해바라기> 주제곡을 들으며 해바라기 밑그림을 숫자의 결 따라 색칠했다. 개미보다 작은 숫자들이 두 눈을 어지럽게 했다. 혼자 놀기 좋은 색칠놀이라 하기엔 눈의 피로와 구부러지는 등줄기가 시큰했다. 실내의 답답한 공기 부숴낼 수 없어 한낮의 태양이 작은 토마토처럼 호수위로 떠다니는 듯 반짝이고 있는 의왕 왕송 호수에 왔다. 호수를 보자 순간 감성이 일었다.


빗방울 후드기는 

호흡마저 건조해 바삭거린다 


고깃덩어리 드문 훌렁한 김치찌개 속 같은

스며들지 못해 떠 있는 기름 같은

이리 저리 뒤적거려도 건져지지 않는 


오래 된 시 한 토막 


아나톨리아 들판을 그려놓은 고흐의 해바라기 문장 

책상 위에서 바스락거리고


지평선을 긋는 노란 얼굴들 

폰투스 산맥 넘어 온 노랑의 물결 

고개 숙인 꽃의 뒷덜미가 고요하다


해가 그늘을 데려왔을까 

꽃이 해를 등졌을까 

등바라기 등바라기

저 어둠속으로 여물어가 가는 


씨앗 같은 

한편의 시

내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햇빛에 꽃 모가지 돌린

7월에 걸터앉아 

오래된 시가 밤을 건넌다

  



 오래 붙들고 있어 올 풀어진 구닥다리 스웨터처럼 묵어버린 상념들 지우며 누군가의 발자국 따라 내 발자국 새기며 홀로 걷는다. 가끔씩 고요를 가로챈 바람이 지나간다. 철길과 나란히 발맞추며 걷는 제방 길 지나니 호수 수문 뒤로 번져오는 철길과 아파트 물그림자 파닥거리며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다.      


팔각정 쉼터 옆구리 끼고 호수를 바라보며 나무 의자에 잠시 쉬고 있는 어르신의 뒷모습 위로 햇빛이 밑줄 긋고 간다. 저 분도 이 순간만은 솜사탕 마냥 달콤한 시간이 되었겠지. 그 모습 바라보는 내일의 내 모습인 듯 가슴이 뻐근하다.     


잡풀에 끌려오는 듯 철로에 이끌려 가는 듯 레일바이크 바퀴 굴리는 웃음소리들 지나간다. 마스크로 중무장한 입들이 조용히 스쳐간다. 보이지 않는 저 입속에는 무슨 말들이 엉겨 있을까. 단풍은 태양 속으로 빨려가듯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만났던 광활한 해바라기 풍경을 그립게 하는 아주 소소한 해바라기가 소박하게 철길을 지키고 있었다. 쉼터에 댓잎파리 몇 조각 사각거리고 황화코스모스가 순간 빠르게 돌아서는 가을 같다.      


붉은 옷 입고 철길 지키는 호수열차를 지나, 풍차 조형물을 건너 수생식물의 광장 생태습지에는 여러 개의 연못과 수로를 나무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생태 습지가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연못은 오래 동안 만나지 못한 그리운 이름들이 한들한들 부들로 떠 있었다.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기 위해서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남아 있는 풍경이다. 연못들을 뒤 덮은 개구리밥을 뜰채로 떠내고 있는 분들의 어깨 너머로 맑은 물 흡입하는 갈대무리가 살랑 댄다. 내 발걸음도 살랑거리며 철길 너머 연꽃 습지로 건너간다. 





산책길 쭈-욱 코스모스 행렬과 한 여름 묶어버린 빛바랜 연잎들이 꿈꾸었던 바닥 연근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뒤 돌아서면 살포시 내민 열대 수련 제 그림자에게 멀리는 가지 말고 곁에 있으라 한다. 하늘 향한 코스모스 따라가지 마라 한다. 

    

레솔레 파크 분수광장 철도 특구 조형물과 평화의 소녀조각상 지나 레일바이크 옆 ktx 쉼터는 굳게 입 다물고 있어 곁 눈길 뿌리고,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들 표정연기에 바쁜 하트 존의 엄마와 딸이다. 갑자기 먼 곳의 엄마가 그립고 가슴 한쪽이 아리다. 한 번도 엄마와 지극히 평범한 추억 하나 그려놓지 못했다는 아쉬움으로 흔들의자에 앉아 흔들흔들 마음을 흔들어 본다. 그리움은 회한으로 흔들흔들, 다정스런 모녀가 부러워서 또 흔들흔들, 뜨거운 보온병에 몸 담근 블랙홍차 티백처럼 다시 오지 못할 추억 속에 잠시 잠겨 흔들리는 시간이다.     


트랜스포머 로봇 앞에 섰다.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제작된 트랜스포머 광장을 지키고 있다. 이런 로봇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내 관심 밖의 분야라서 몰랐던 건 당연한 거야. 혼자 궁시렁거리다 철길 옆 철모르는, 철없는 장미는 꽃으로만 피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철딱서니 없이 피기도 하는구나. 

       



나뭇가지에 헝클어진 마른 잎들이 견디기 힘든 날들이 따라붙어올 가을을 조금은 남겨두고 데크 길을 걷는다. 호수에 빠진 석양을 삼키고 있는 물오리 바라본다. ‘온전히 나를 잃어버리기 위해 걸었다’고 한 안희연 시인의 시어가 꼭 나인 것 같아 한참 그렇게 해를 따라간 해바라기처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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