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숲 Feb 10. 2023

춥지만 일단 나가고 본다

겨울 걷기 운동의 귀찮음과 즐거움



  오랜만에 걸었다. 날 추워지기 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 만보 걷기를 꼭 하곤 했었는데 한동안은 걷기 운동을 잊고 지냈다. 춥다는 핑계로, 날이 금방 어두워진다는 핑계로 하루 이틀 걷기를 미루다 며칠 전 체중을 재보고 나서는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바로 나가서 만보를 걷고 왔다. 오전 7시 서서히 해가 뜰 준비를 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니 어느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더라.



겨울 나무는 여명 속에서 더욱 빛난다




 

 작년에 걷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나만의 코스를 몇 가지 만들어 놓았다. 도심코스, 호수공원 코스, 마을 코스, 낮은 동산 코스, 하천 코스 등등. 오랜만에 나왔으니 어디로 갈까 하다가 나는 하천을 따라 걷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하천을 따라 죽 걷기만 하는 하천 코스는 지겨울 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운동을 나온 나에게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걷기에는 꽤 좋은 코스였다. 하천을 따라 걷다 보면 큰 호수를 만날 수 있는데 좁다란 길을 걷다가 큰 호수를 마주하는 기쁨도 꽤 크다. 아무튼 오랜만에 걷다 보니 그동안 추위 핑계로 내가 놓쳐버린 겨울 공기의 짜릿함, 겨울 하늘의 청명함, 겨울나무의 인내하는 시간, 그리고 부지런히 제 삶을 살아가는 새들을 바라보는 일들의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맞아. 그랬지. 감각을 깨우는 데에는 걷기가 탁월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겨울 아침 호수위의 새들

  

 얼어붙은 하천에서는 가끔 쩍쩍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 얼음이 녹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음이 녹고 있다는 건 봄이 온다는 신호일까. 겨울이 시작되기 전부터 봄을 기다려 온 나는 산책 중에 봄이 다가오는 작은 신호만 보여도 행복해졌다.


 하천 한편, 얼지 않은 곳에서는 새들이 있었다. 호수의 새들은 이른 아침 자신의 날개에 머리를 파묻고 서로 모여서 잠을 자고 있었다. 새들은 이렇게 추위를 막아가며 서로의 온기로 길고 추운 밤을 나고 있었다. 그중 먼저 잠에서 깨어난 이들은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아직 잠이 덜 깬 새들은 자리에 멈춰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걷기를 하다 말고 새들을 한 참 바라보았다. 차가운 계절이지만 자신의 방법으로 이 겨울을 잘 이겨내고 있는 존재에게서는 뭔가 경외감이 느껴진다. 지구상의 무수히도 많을 겨울을 이겨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을 잠시 떠올려본다.



얼어있는 호수, 금방 봄이 찾아오겠지.



 겨울을 나는 새들을 지나 한 참을 더 걸어갔다. 넓은 호수에 다다를수록 나의 몸은 데워지고 쓰고 있던 모자며 장갑마저 번거로워졌다. 물론 그래도 장갑은 끝까지 차고 있었지만. 그렇게 나의 걸음에 집중하며 조금씩 빠르게 걸었다. 그동안 춥다고 집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나 눈도 침침한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걸으며 주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원해졌다. 그리고 하천 코스의 마지막 스폿. 내가 좋아하는 호수를 눈에 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역시 추워도 일단 나가고 봐야겠다. 일단 나가면 걷게 된다. 걷다 보면 늘 보던 풍경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잊고 지내던 영감도 찾아들기도 하니까. 걸을 수 있어서 오늘도 행복한 하루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후 세시의 녹턴과 녹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