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훔쳐가는 행복도둑을 잡아라
피곤하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몸이 본능적으로 고칼로리를 원한다. 나는 원래는 캬라멜 마키아또를 제일 좋아했다. 고소하고 달콤한 시럽과 커피 향의 냄새가 후각을 기쁘게 해 주고 마시면 급속도로 당이 충전되면서 에너지가 마구 솟아오른다. 빠른 속도로 기분이 좋아하는 힘이 캬라멜 마키아또에는 가득 담겨있다. 아쉬운 것은 건강 때문에 커피도 절제하고 단것도 줄이는 중이라 이제는 마음껏 "캬라멜 마키아또 한잔요"라고 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커피 전문점 앞을 지나면서 최소 다섯 번은 '마실까?' '그냥 지나갈까?'를 고민한다. 주문을 할 때도 '우유는 안 좋겠지? 귀리나 오트밀로 변경할까? 디카페인으로 변경할까? 그냥 아메리카노는 싫은데 힝... 까페라떼 시럽 없이 한잔쯤은 괜찮지 않을까. 요즘 많이 안 마시니까 말이야...' 이러면서 몇 번을 스스로 묻고 대답한 후에야 겨우 한잔을 주문한다. 그런 내가 어제 캬라멜 마키아또를 마셨다. 용감하게 말이다.
한 달간의 대장정. 살면서 리모델링이 끝났다. 20년이 넘은 아파트를 올수리 하기로 결정하고 짐을 싹 빼는 이사를 했다. 그리고 완전히 철거하고 한 달 동안 창문 샷시를 포함하여 전체를 뜯어고쳤다. 그동안 나와 딸아이는 친정으로, 남편은 시댁으로 각자 뿔뿔이 흩어져 남의 집 살이를 시작했다. 공사현장에 매일 들여다봐야지 연로하신 엄마의 건강이나 생활도 조금은 챙겨야지, 낯선 집과 지역에 적응해야지 내 몸이 안 피곤하면 이상하다.
피로감이 누적되고, 나 스스로도 지쳐간다고 느껴질 때 생각이 났다.
'캬라멜 마키아또를 마셔야겠다!'
내 컨디션과 마음의 상태는 나에게 제일 먼저 느껴지기 마련이다. 공사가 막바지로 갈수록 그동안의 긴장감과 신경쓰임은 누적이 되어 피로감으로 나타났다. 종종 비가 오고 흐린 날이 많았는데 그런 날에는 더 기분이 축 처지고 몸이 물먹은 솜처럼 힘들었다. 그래서 참으로 오랜만에 캬라멜 마키아또 한잔을 테이크 아웃했다. 집으로 가져오는 동안 컵홀더를 뚫고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따스함이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캬라멜 시럽의 냄새도 벌써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니 역시 나는 카라멜 마키아또를 사랑하는구나 싶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그래도 힘이 난다. 내가 지치고 힘이 드는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어 감사하다. 그리고 또 어딘가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다행한 일이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카라멜 마키아또를 먹어야 하는 날이 오는 법인데,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나 보다.
성인 아이인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역할을 덧입어야 했기에 나의 감정과 감각을 억눌러왔다. 피곤해도, 슬퍼도, 힘들어도 그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지 못하고 부정하고 눌렀던 것이다. 이걸 해야지, 그다음에는 이걸 해야지,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고 지금 그런 감정 따위 느낄 시간이 어디 있어라는 게 기본 모드이다. 그걸 알아차린 이후로 나는 내 마음에 종종 귀를 기울인다. 내 몸이 주는 사인에도 귀를 기울인다. 잘 들어주고 그렇다고 지지해 준다. 나 스스로 말이다.
이번에도 입주 이사를 앞두고는 무척 긴장이 되었다. '저 책꽂이는 올리지 말고 버린다고 말해야 하는데, 가구 배치 전에 멀티탭을 미리 꽂아야 하는데 그때 차 트렁크에 넣어두었었지? 미리 꺼내야겠네. 인부들이 마실 음료수와 물은 언제 어디서 사지?' 등등 머릿속에 계속해야 할 일, work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차 있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삿짐 업체가 돌아가고 우리 가족만 남겨지고 나서야 비로소 휴 하고 숨이 쉬어지며 그제야 새롭게 단장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깨끗해진 집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마음을 그대로 느끼는 연습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힘들 때는 힘들구나 느끼고 캬라멜 마키아또 한잔을 마실 것이다. 불안할 때는 불안하구나 느끼고 다독다독 위로해 줄 것이다. 힘이 필요할때는 느끼한 고칼로리 밥상을 먹고 힘을 낼 것이다. 이런 내가 있어서 좋다고,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