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다시, 나로 서기 시작하다

게을러지고 싶어 12

by 냠냠

이사를 할 땐 항상 나 혼자 해내야 했다.

집을 보러 다니는 것도, 계약도, 짐을 싸는 것도 다 내 몫이었다.

다행히 서울로 이사 올 땐 갓 스무 살이 된 아들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운전, 셀프 리모델링, 동생 학교와 학원 등록, 픽업까지.

아들이야기는 따로 한 장을 써야 한다.

딸 이야기도 그렇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그 시절, 세상이 ‘영끌’이라는 단어로 떠들썩했을 때

그건 곧 나의 이야기였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던 시기,

나는 일산에서의 풍요로움을 버리고

서울로 이사와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아는 사람도, 여유도, 생활비도 없었다.


처음 살아보는 40년 넘은 아파트.

베란다 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고,

시는 삐걱거리고 방충망은 다 찢어져 있었다.

이사 당일, 엄마는 집을 둘러보다

조용히 눈물을 훔치셨다.


“귀신 나올 것 같다…”

엄마의 그 말이 내 마음을 찔렀다.

그래도 고등학생 딸에게 약속했다.

“너의 방은, 이사 오기 전 그 모습 그대로 만들어줄게.”


그날 이후 나는 아들과 함께 밤마다 인천과 광명을 오갔다.

도배, 장판, 페인트, 샤시 청소, 방충망 기우기.

두 달 동안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손끝은 늘 페인트로 얼룩졌고

손톱 밑엔 하얀 먼지가 박혀 있었다.


그 와중에도 생각났다.

“10만 원만 벌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마음으로 지사에 찾아가 강사 등록을 했다.

낮에는 페인트칠을 하고,

밤에는 학생들과 수업을 했다.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너무 감사했고

나는 매 시간마다 진심을 다했다.


남편이 휴가 나올 때마다

투정 부리고 불편한 점을 털어놓으면

남편은 직접 망치를 들고 고쳤다.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있을까 싶었지만

우린 그렇게 집을 고쳤다.

투박하지만 따뜻하게.

그 집이 이제 참 좋다.


항상 새 아파트에서, 좋은 위치에서 살아왔던

나와 아이들에게 이 낡은 집은 낯설었지만

이제는 그 소박함이 좋다.

서울 한복판인데도

자연이 가까운 집,

마음이 숨 쉴 수 있는 집.


서울에 와서 나는 외로움을 견디며

정리정돈 자격증을 따고

집을 전문가처럼 가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번, 학원을 열었다.

20년 넘게 해온 일을

이제 내 이름으로, 내 방식으로 꽃 피우고 싶었다.


남편은 여전히 내가 사회로 나가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가정 안에서의 나를 원했지만

이제 나는 일하는 게 좋다.

남편만 바라보는 게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갱년기라는 이름으로 내 안의 변화가 찾아왔고

그걸 받아들이는 건 나뿐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좋다.

외로워서 발을 디디면

그 속에서 또 배우고 자라난다.

이제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두렵지만, 50이니까.

해보고 싶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며.

그렇게 나로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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