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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Apr 28.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10

2024.4.28 천양희 <그때가 절정이다>

아직은 여름이라 칭하기에 서툴건만 곳곳에 이미 여름이 와 있습니다. 월명산책길을 돌다보니 보랏빛 등나무 꽃이 만발하고, 하얀 층층나무꽃도 가득하구요, 심지어 오동나무꽃이 오롯이 호수를 밝히고 있더군요. 말랭이 마을 앞머리에 오동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요, 주거 3년차 매년 오동나무의 변신을 바라봐요. 아직 그녀는 꽃을 피울 때를 기다리는 조신한 자세인데, 월명호수의 오동은 벌써 이쁜 자태를 뽐내고 있군요. 마치 사춘기 중학 소녀의 화장거울 속 모습처럼요. 어제는 아침걷기 2시간, 말랭이 행사 7시간 등을 한다고 오르락 내리락 걸었더니, 밤새 어찌나 불편한 신호가 오던지요. 소위 ‘다리가 에려서리...’라는 끙끙거림이 절로 나왔답니다. 그래도 또 이렇게 새벽은 오고 눈이 떠지고 손가락은 얘기를 쓰고 있군요. ‘사는 게 다 그런거지‘ 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네요. 초록이 하늘거리는 산속, 파랑이 출렁거리는 바다곁에라도 가서 어지러운 몸과 맘을 적시면 좋겠다 싶은 아침입니다. 손에 책 두 권쯤 들고, 혹시 모르니 연필로 글쓰기 자세하나 만들어서요. 오늘 성당 선약이 있어서 움직일 수 없음이 아쉽긴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일지라도 언제나 제 편은 있는 법, 다음 기회에 누워봐야겠습니다. 4월의 일정을 되돌아보니, 첫날부터 다 의미있는 만남이 있었군요. 봄꽃들의 환호에 설레였던 날들, 존경하는 시인들과 은파 데이트를 하고, 처음으로 고향친구와 인터뷰도 하고, 작은 텃밭에 감자도 심고(지금 감자싹이 제법 났지요^^), 각종 4월 행사참석, 글쓰기수업 시작, 그 와중에 먹고살 방편에도 충실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까요. 저는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제 그릇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양을 느낄 때이지요. 그때는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상책인줄 압니다. 그래야 먼 훗날, 더 맑고 좋은 물을 받을 수 있음도 알고 있지요. 과부하가 걸린 4월의 어느 시간들, 어느 사람들이 넘치는 물로 다가와서 잘 덜어내고 5월을 맞이한다고 제 마음에게 선포했지요. 언제나 삶의 중심은 ’바로 나‘이니 제 안의 마음이 답하네요. “잘했어요. 모니카!!” 오늘도 천양희 시인의 시 한편 더 들려드려요. <그때가 절정이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그때가 절정이다 -천양희   

  

하늘에 솔개가 날고 있을 때

지저귀던 새들이 숲으로 날아가 숨는다는 걸 알았을 때

경찰을 피해 잽싸게 골목으로 숨던

그때를 생각했다

맞바람에 나뭇잎이 뒤집히고

산까치가 울면 영락없이 비 온다는 걸 알았을 때

우산도 없이 바람 속에 얼굴을 묻던

그때를 생각했다

매미는 울음소리로 저를 알리고

지렁이도 심장이 있어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알았을 때

슬픔에 비길 만한 진실이 없다고 믿었던

그때를 생각했다

기린초는 척박한 곳에서만 살고

무명초는 씨앗으로 이름값 한다는 걸 알았을 때

가난을 생각하며 '살다'에다 밑줄 긋던

그때를 생각했다

제 그림자 밟지 않으려고

햇빛 마주 보며 걸어갔던 시인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독에 바치는 것이 시라는 걸 알았을 때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그때를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때가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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