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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May 19.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31

2024.5.19 복효근 <어느 대나무의 고백>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세 사람이 길을 갈 때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나요. 공자님은 참 성인 맞나봐요. 어찌 이 세상에 제가 태어날 것을 알고, 이리 꼭 집어 예언을 하셨을까요. 

‘오호라, 내 뜻을 그대가 알아차리니 나 또한 심히 기쁘도다’

라고 말하는 공자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어제는 정말 말 그대로 세 명의 사람(여인)이 모여서 삶을 잘 살아가는 법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았습니다. 겉보기에 너무도 다른 세 여자는 언어라는 화살촉에 무슨 꿀을 발랐기에, 그토록 정담을 나누었을까요. 더구나 저는 그들과의 대화에서 스승을 둘이나 얻었으니, 아마도 저 처럼 탁월한 이윤을 남긴 이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모습이 다를진대 하물며 열 길 물속도 감히 대항하지 못하는 사람 마음속 모습이 어찌 같을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사람 사이에 마음 길을 트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지요. 그나마 공통의 사유와 가치관, 공통의 활동과 취미를 통해서나마 비슷한 마음 물결을 찾아냅니다. 정담을 나눈 인생 선배들의 따뜻한 조언을 들으면서,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배우며, 더 많이 물러서는 법’을 인정했습니다. 

오월의 들판에 출렁거리는 황금보리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다가가서 보리이삭을 덮고 있는 깔깔한 까락들의 춤사위를 오랫동안 구경했습니다. 돌아와 하루를 되돌아보았지요. 제 마음을 들여다보니 보리 까락들이 참 많이도 보이더군요. 무용(無用)인 듯 보이는 까락일지라도, 이왕이면 잘 소용되도록 마음을 둥글게 다스리는 연습을, 아침편지 쓰듯 매일매일 해야겠습니다. 세 여인 중에 시를 정말 사랑하는 시인이 있었는데요, 대죽잎 울타리를 보고 즉석에서 낭송하신 시,  바로 복효근 시인의 <어느 대나무의 고백>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어느 대나무의 고백 – 복효근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 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하건대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난세의 죽창이 되어 피 흘리거나

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는

정수리 깨치고 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장군죽비

하다못해 세상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회초리의 꿈마저

꾸지 않는 것은 아니다.

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

어둠 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아아, 고백하건대

그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을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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