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모니카 Jul 26.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99

2024.7.26 박남준 <당신을 향해 피는 꽃>

요즘 기상시간은 5시 54분. 같은 숫자를 며칠째 보고 있는데, 진짜 신기하죠. 몸처럼 정직한게 없나봐요. 저녁수업 후 땀 흘리며 한 시간 정도 걷는데요, 그 땀이 흘리는 느낌이 좋아서 더 걷고 싶어지네요. 이러다가 아줌마 몸매가 살짝 바뀐다면 더없이 즐거운 비명 지르겠어요.   

  

딸아이 귀국일이 가까워질수록, 조심 또 조심을 당부하고 있어요. 방금도 기차파업으로 또 프랑크프루트에서 발목 잡혔다길래, 돈을 쓰더라도 빨리 벗어나는 교통편을 잡으라고 했네요. 그곳의 기차역 밤 문화는 매우 기묘해서 위험해 보였거든요... 며칠 전에도 톡이 되지 않아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저 혼자 상상의 나래가 너무 펼쳐져 별의별 걱정을 다 했답니다. 동시에 이태원참사 희생자와 가족들의 아픔도 떠올라 이내, 그분들의 투쟁현실에 마음 한 표를 묶었답니다.     


어제는 기습 장맛비로 모두 당황했다고 해요. 실내에만 있어서 얼마나 비가 내렸는지 몰랐거든요. 근데, 저녁에 제 차를 보니, ‘아고야‘ 창문 네 쪽이 입을 활짝 벌리고 있더군요. 내리는 비는 없었지만 내렸던 비 흔적이 가득해서 습기차고 쿱쿱한 차의 실내를 햇빛에 내 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자동차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빨래줄과 장대가 있다면...      


고전평론가 ’고미숙작가‘의 영상을 애청하는 데요, 오랜만에 그 작가의 강연을 다시 들으며 문우들께 공유했네요. ’통쾌한 글쓰기‘에 대한 말이었거든요. 여러 말이 있었지만,’언어는 피부보다 깊다‘라는 표현이 와 닿았어요. 사실, 언뜻 보면 너무 마땅한 표현 같지만, 실제로 그것을 인지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피부의 깊이도 눈으로 보이지 않고, 언어의 깊이는 더 보이지 않으니까요.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 피부의 깊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음에도 빗대어 깊이를 논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중요하다는 뜻이겠죠.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언어의 깊이를 아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책읽기와 글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글쓰기를 해보세요. 단 한줄이라도요. 누구나 할 수 있는 본능이 바로 글쓰기예요. 말하기는 잘하는데, 글쓰기가 안된다고요? 제가 볼 때 말하기와 글쓰기는 똑같이 비례합니다. 설혹 ‘말하기도 못하는데‘라고 생각하시면 매일 만나는 문자들을 소리내어 읽고 따라 써보세요. 최소 한 문장 이상의 글귀를 만날테니까요. 중요한 것은 꾸준히 하는 습관, 바로 밥을 먹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잠을 자듯이요. 오늘부터 바로 해보실래요...^^ 차를 타고 오면서 스친 능소화가 생각나네요. 

박남준시인의 <당신을 향해 피는 꽃>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당신을 향해 피는 꽃 박남준     


능소화를 볼 때마다 생각난다

다시 나는 능소화, 하고 불러본다

두 눈에 가물거리며 어떤 여자가 불려 나온다

누구였지 누구였더라

한번도 본 적 없는 아니 늘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던

여자가 나타났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어 나무에, 돌담에

몸 기대어 등을 내거는 꽃

능소화꽃을 보면 항상 떠올랐다

곱고 화사한 얼굴 어느 깊은 그늘에

처연한 숙명 같은 것이 그녀의 삶을 옥죄고 있을 것이란 생각

마음속에 일고는 했다    

 

어린 날 기억 속에 능소화꽃은 언제나

높은 가죽나무에 올라가 있었다

연분처럼 능소화꽃은 가죽나무와 잘 어울렸다

내 그리움은 이렇게 외줄기 수직으로 곧게 선 나무여야 한다고

그러다가 아예 돌처럼 굳어가고 말겠다고

쌓아올린 돌담에 기대어 당신을 향해 키발을 딛고

이다지 꽃 피어 있노라고     


굽이굽이 이렇게 흘러왔다

한 꽃이 진 자리 또 한 꽃이 피어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봄날 아침편지9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