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9 나상국 <겨울단상에 젖어>
말랭이마을 관리하는 시 관계자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새해 계획을 논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예산은 터무니없이 적으면서, 작가들의 창의성을 요청하는 분량은 늘어나지요. 공짜로 사는 것도 아닌데, 왠지 불평을 하면 안되는 듯한 상황이 묘해서 속으로만 푸념하며, 웃으며 굿바이 인사를 했답니다. 하긴 그분들도 행정의 어려움 때문에 머리 아프겠지 싶어서요.
말랭이 마을 건물 중 ’이야기마당‘에 올해의 성과물을 전시하면 어떻냐는 제안에, 저는 지금까지 나온 출판물을 전시하기로 했습니다. 또 어머님들의 자작시와 그림도 함께 전시하겠다고 했지요. 마을의 주인인 어머님들은 저를 볼때마다, 작년에 글 공부를 했을때가 참 행복했다고 말씀하시지요. 요즘은 마을협동조합이 생기면서 당신들의 일거리가 늘어나니 책과 글을 접할 시간이 많지 않겠지요. 사는 것이 다 그렇게, 양손에 달콤하고 이쁜것만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저도 새해 일년 다시 책방운영하면서, 말랭이주민으로 살아갈텐데요, 굳이 시 행정인들의 지침이 아니라도, 저를 위해서 색다른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려 합니다. 생각에 생각을 물고, 폭넓게 귀를 열어두면 분명 가치있는 어떤 주제들이 찾아올거 같아요. 단지 그 모습이 무겁지 않고 가볍지만 누구라도 함께 나눌 주제이길 바랄뿐이지요.^^
겨울방학을 기다리는 학생들을 위해 저는 학원에서의 송년을 준비합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학생들에게 줄 선물도 준비하고, 2학기 좋은 성적을 낸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도 챙겨야 하고, 작은 일들 같지만, 모두 소중한 일들이기에 오늘도 이곳저곳 바쁘겠어요. ’눈이 오려거든 이 몸이 바쁘니 주말에나 찾아오거라’ 하며 주문을 걸며 엄마와 새벽데이트를 하러 나갑니다. 나상국시인의 <겨울단상에 젖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겨울단상에 젖어 – 나상국
하루하루 짧아지는
하늘 빛 길이 만큼
점점 더 짧아지는 보폭으로
종종 걸음질 친다
땀나도록 토해내던 열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빛바랜 낙엽을 떨어낸
나무들이 나목으로 거리에 서서
이제 싸늘하게 식어버린
바람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 안아야 한다
새의 깃털같이
가볍게 떨어져 내리는
순백의 날들이 수북이 쌓이는
계절의 강가에 머물며
수런대는 갈대의 이야기를
밤새워 듣는다
어느 오후
먼산 그림자를 밀어내고
설화 피어난 창가에 서성이며
찻잔을 맴도는
짧은 생각의
나이테 하나 긋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