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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아침편지314

2025.2.26 도종환 <이월>

by 박모니카


‘말에 의해 오염된 헌법적 가치를 바로 세워주십시오‘ 윤씨의 탄핵과정 마지막 변론에서, 국회측 청구변호인단 중의 한 변호사가 말했습니다. 국민들이 윤씨에게 속았던 그 유명한 말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했던 말. 이 말 하나로 대통령이 되었다고 할 만큼 말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행동이 거들먹거리고, 태도가 제왕적인 그에게 완전 비호감을 가졌던 저 역시도, 이 말만큼은 그럴싸하게 들렸었던 걸 기억합니다.

취임이후 그의 언행은, 그 중 말에는 품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언어의 논리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니 9수를 했느니, 그러니 9수까지 하느라 고생했다느니,,, 수 많은 비하적 말들이 따라다녔지요. 그럼에도 대통령자리는 유지하며 끝낼줄 알았는데, 이런 되돌아 갈수 없는 내란사태를 스스로 일으켰지요. 어제 그의 마지막 변론에서도 그는 반성의 말보다는 자리 복귀를 희망하며, 여전히 타인에 대한 비방이 깔려있었지요. 아직도 자신이 가진 권력의 실제 주인이 국민인줄 모르는 그. 참으로 안타깝고 그의 사상은 무섭습니다.

말 한마디의 힘. 어린아이들을 만날수록 그 힘은 더욱 발휘됩니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 학생이 갑자기 묻더군요. ’원장님 그 노트북 얼마예요? 엄마생일인데 제 용돈으로 살까 해요.‘ 비용을 듣더니, 까악~~ 하더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딸이 보내준 ’편지‘였다고 말하며 한 예를 보여주려고 책상서랍을 들췄죠. 그런데 신기한 편지가 있었던 거예요. 제가 하도 정신을 딴곳에 두고 살아서, 보물들이 이곳저곳에... 가끔 놀라운 일이 있지요.


서랍에서 찾아낸 금박지 봉투안에 무려 오천만원이 있는거예요. 아름다운 글을 담은 편지와 함께요. 2017년 2월에 받았으니, 8년이나 지났더군요. 학생도 저도 놀라고 신기해했어요. 특히 학생은 온갖 감탄사를 다 동원하여, 엄마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할지 확실히 알았다고 하더군요. 또 한번, 말로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던 시간이었답니다.


지인들과 글과 말로 품격있는 삶을 살아가자며 실천하는 몇몇가지 매일수행이 있는데요, 학원의 신학기 준비를 하면서, 매일 만나는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은 활동, ’한줄 명언 칠판에 써서 들려주기‘를 실천하자고 했습니다. 특히 시 구절(영미시 포함)를 소리내어 읽도록 유도할까 하지요. 분명 소리없는 아름다운 파문이 그려질 것입니다.^^ 오늘의 논어구절은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한 가지만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입니다. 도종환시인의 <이월>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이월 – 도종환


입춘이 지나갔다는 걸 나무들은 몸으로 안다

한문을 배웠을 리 없는 산수유나무 어린 것들이

솟을대문 옆에서 입춘을 읽는다

이월이 좋은 것은

기다림이 나뭇가지를 출렁이게 하기 때문이다

태백산맥 동쪽에는 허벅지까지 습설(濕雪)이 내려 쌓여

오르고 내리는 길 모두가 막혔다는데

길가의 나무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다

삼월도 안심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월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는 무엇이 있다

녹았던 물을 다시 살얼음으로 바꾸는 밤바람이

위세를 부리며 몰려다니지만

이월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지나온 내 생애도 찬바람 몰아치는 날 많았는데

그때마다 볼이 빨갛게 언 나를

나는 순간순간 이월로 옮겨다 놓곤 했다

이월이 나를 제 옆에 있게 해주면 위안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도 이월이 슬그머니 옆에 와 내가

바라보는 들판의 푸릇푸릇한 흔적을 함께 보고 있다

2.26 이월1.jpg

사진, 지인제공

2.26이월2.jpg
2.26이월3.jpg 8년 전이면 중1이었을까... 벌써 이십대 청년인데. 흠, 이런 일도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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