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19 정민경 <그날>
2주 만에 찾은 텃밭에는 푸른 감자싹이 출렁거렸습니다. 심었던 감자씨가 한 톨도 빠짐없이 제 구실을 하고 있는 듯, 감자 한 알에 우르르 딸려 나올 감자알이 눈에 성글어서 엄청 기분 좋았네요. 몇 년째 텃밭작물을 키워보니, 감자만큼 실효성과 가성비가 좋은 열매가 없는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심어만 놓으면, 하늘에서 연일 폭우로 성내지만 않는다면 따놓은 당상이 따로 없답니다. 조만간 감자꽃도 필테니, 옆집의 자줏빛 강낭꽃을 시샘할 맘이 다 사라졌지요.
지나가시던 할머니 한분이 마늘쫑을 먹을 거냐고 물었어요. 저는 누가 먹을 것을 준다 하면 무조건 받아서... 많으면 나누면 되니까요. 싱싱한 마늘쫑을 지인들과 나누니, 한몫이 다섯 몫이 되었더군요. 하라머니께는 카스테라라도 사 드려야겠어요. 그럼 또 뭔가를 주시려나요~~
마늘에도 꽃이 피냐고 물었더니, 전남의 어느 곳은 마늘꽃 축제도 있데요. 마치 팥죽빛 같은 마늘꽃. 언뜻 보기엔 대파꽃처럼 생겼더군요. 꽃 사진을 찍고 싶어서 꽃 필 때까지 마늘 쫑 안 따면 어떠시냐고 물어볼까?? 했더니, 농부에게는 꽃보다 마늘이 중요하다고 답하네요. 그렇긴 하지요. 누구는 먹사니즘, 잘사니즘을 외치고 있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마늘꽃을 직접 보고 싶은 맘은 내려가질 않아요.^^
하루가 지났다고 5.18이 사라질까요. 어제는 5.18 민주항쟁에 대한 몇 편의 시를 읽었는데요. 김남주 시인의 <학살> 시리즈가 대표시구요. 모 프로그램에서 신동호 시인이 낭독해 준 정민경 시인의 <그날>이라는 시가 알게 되었어요. 그러고 보니, 매년 찾아오는 5.18일 인데, 유독 올해 더욱더 깊이 인화되는 것은 아마도 쿠데타가 옛이야기로 치부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해서 일거예요. 오늘 하루 더, 광주민주항쟁의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맘과 진짜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들의 할 일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참고로, 정민경 시인의 시 <그날>은 2007년 제3회 5·18 민주화운동 기념 서울 청소년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았고 SNS에 '천재 고교생의 5·18 시'로 화제가 되었던 시 라고 해요이다. 당시 경기여고 3학년, 서울 지역 학생이지만 부모가 전남 출신이어서 전라도 방언에 익숙했고, 부모나 친척을 통해 5.18 일화들을 들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그날 – 정민경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 것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 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재.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 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