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4 송찬호 <가을>
누가 뭐래도 명절은 전통시장에서 장을 봐야 할 것 같은지... 하루 종일 내리는 비에 엄마와 국밥 한 그릇 먹으로, 소위 군산의 세느강변 국밥집 골목을 들어서는데요. 어찌나 차와 사람들이 붐비던지요. 몇 바퀴를 돌고서도 결국 시장과 멀리 떨어진 주택골목에 주차를 하고 걸어 나오는 중, 갑자기 밀물처럼 달려드는 초등학교 때 생각. 주차 하나도 본능이 작동하는 것인지, 제가 잘 다니던 골목에 놓았던 거지요.
지금은 대형교회 하나가 그 넓은 땅을 다 차치하고, 곳곳에 지땅이라고 막대를 설치한 꼴불견이지만, 저 어렸을 때에는 밤하늘에 비치는 교회의 붉은 십자가가 동네의 등불이 되기도 했지요. 저도 크리스마스 때 사탕 받으러 갔던 기억이 있으니까요... 차를 뒤로 하고 일부러 골목길을 조금 걸어봤어요. 뱃살 튼 듯한 갯벌이 쭉 뻗어 만든 물길처럼, 수 많았던 골목길이 이제는 한 두 개만 보이고, 역으로 가난하고 어두웠던 골목길을 이제 와서 다시 그리워하는 일도 본능처럼 느껴졌답니다.
그래도 국밥집, 좁은 자리에 앉아야만 왠지 더 맛난 국밥을 먹는 듯, 타인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도, ‘명절이라 사람이 많네 ‘ 라며 기꺼이 웃음으로 괜찮다는 손짓하는 사람들 속에서 저도 웃는 명절연휴를 시작했어요. 마음속으로는 대형마트보다는 작은 가게 주인들의 손발이 바쁘길, 웃음이 피어나길, 소망하면서, 선물 하나라도, 그런 분들께 사려고 기웃거리면서요.
연휴가 길어서 어제까지 정상수업하고, 오늘도 몇몇 학생들이 보충이 있지만, 그래도 마음은 가볍지요. 설날에는 세뱃돈이라도 있는데, 눈 비비고 아침 일찍 나온 우리 학생들이 기특해서, 가방을 뒤져보니, 천 원짜리 신권 몇 장이 잡히고, 운 좋게도 나온 학생숫자와 똑 떨어져서 한 장씩 나눠주며, ’ 복돈이다’ 라며 선물... 사실 천 원짜리는 돈도 아닌 세상인데, 우리 학생들 함박꽃 피듯 좋아했어요. 아마도 기억에 남을 학원의 모습이겠지 싶어서요~~
긴 연휴라고 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10월도 절반이 가버립니다. 갑자기 가수 이문세 노래 중 ‘사랑은 늘 도망가’의 가사가 떠오르는군요.
- 사랑아 왜 도망가 / 수줍은 아이처럼 / 행여 놓아버릴까 봐 / 꼭 움켜쥐지만 /그리움이 쫓아 사랑은 늘 도망가 / 잠시 쉬어가면 좋을 텐데 -
갈 때 가더라도, 잠시라도 움켜쥔 손바닥에 행복한 흔적이 가득 그려져 있길 소망합니다.
오늘은 송찬호시인의 <가을>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을 -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긋이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별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부치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을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어물전, 단정한 박대처럼,,, 명절도 예의바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