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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06

2025.11.10 나태주 <내가 사랑하는 계절>

by 박모니카

만경, 새창이 다리를 걸어보며, 가을냄새를 맡았네요.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짐 정리하던 중 한 시간여 일부러 외출했어요. 계속 먼지 투성이 속에서 답답해서요.^^ 만경의 석양과 억새, 갈대가 한 곳에 어우러진 곳에 갔는데요, 이른 시간이라 노을빛은 못 보고, 만경강가의 이름을 알려주는 지도판을 보며 억새와 갈대, 그리고 바람을 담아보았습니다. 사실, 가고 오는 길에 은행나무 숲이라도 있을까 했는데,,, 아쉽게도 없었지요. 조만간 전주 향교의 은행나무를 보러 가야지,, 하고 돌아왔죠. 지인께서 보내주신 그곳의 은행나무 황금빛풍경이 절정에 이르렀더군요.


올해 제 에세이가 최종본 커버가 나왔네요. 말랭이 입주작가라는 격에 맞지 않은 이름을 달고 산지, 4년... 동네글방하며 약속했던 ‘시화집’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분들의 이름을 공동저자로 실어드린 약속도 지켰습니다. 책 표지 그림은 저를 무지무지 아껴주는 이정숙 작가의 펜화작품이고요, 함께 동네글방 했던 김정희 작가의 작품과 그림도 함께 실었습니다.


말랭이 벽화 한편에 10명의 어머님들 시화 작품이 있는데요, 마을 벽이 부서지지 않는 한 영원히 남아, 저를 기억해 주시겠지요. 마찬가지로, 당신들께서 글 작가로 이름이 들어간 책 역시 오랫동안 간직하실 거라 믿습니다. 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께 편지로서 언급했던 약속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고 기쁨입니다. 더불어 내년에는 누구와 함께, 어떤 프로젝트를 할까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삶의 즐거운 동력이 되는군요.


머릿속으로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할 일들의 목록이 자전거 바퀴 체인처럼, 반복해서 저를 상기시킵니다. 새 집으로 들어가는 마음에 희망의 기도를 하는 것 못지않게, 살아온 자리를 떠날 때도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잘 살게 해 주어서 고마웠다고요. 집안 곳곳을 둘러보면 그 마음이 더 간절해지지요. 오늘도 간절한 마음, 변치 않고 시간 곳간을 잘 채워보겠습니다.

오늘의 시는 나태주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계절>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내가 사랑하는 계절 - 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개끔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려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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