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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07

2025.11.11 김설하 <가을이 자꾸만 깊어가네>

by 박모니카

노끈으로 책을 꽁꽁 묶어 놓으면, 재활용봉투에 덜 입는 옷을 담아놓으면 값을 쳐준다하길래, 며칠에 걸쳐 손이 얼얼할 정도로 준비했었죠... 얼마를 받았을까요^^

옷 더미 38g, 책 묶음 60kg에 16000원 받았습니다. 책도 소설이나 동화책 정도만 받는다고 해서 절반 값만 주더군요, 보고서형태의 책 더미는 무상수거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할 처지였어요. 책은 1kg 30원으로 책정하고요, 의류는 400원. 아무리 중고책이 되었다 해도 1권도 아니고, 1kg 당 30원 이라니요. 요즘 책 값이 장난 아니게 비싸졌는데 말이죠. 이러니 책을 끼고 다닐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받은 돈을 물끄러미,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책을 만들기까지 작가는 얼마나 노고를 아끼지 않고 글을 썼을까. 출판사는 얼마나 큰 기대를 하며 책을 만들었을까. 이 책이 살아온 알지 못할 그 과정을 가늠해 보니, 작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했습니다. 또한 1주일 가까이 이삿짐 정리차 몸을 움직인 노동의 대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혹독하여, 누군가가 고생한다고, 밥 한 끼 값 주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지요.


오늘은 냉장고 차례죠. 먹을 거 버리면 죄받는다 생각하다가 방치한 음식을 잘 분류해서 저장하는 일. 혹시라도 맛난 음식재료 있으면 얼른 나누는 일. 정말 할 일이 끝도 없지요.~~


하지만 다 시간이 해결해 줄 터이니, 단 10분만이라도 가을 하늘 한번 보고, 뒹구는 낙엽 한번 바라보고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순간이동해 있겠지요. 빨리 이사하고, 쉬고 싶습니다. 뜨뜻한 온돌방에서 진하게 걸러진 대추차 한잔도 마시고 싶고요. 왕 노란 은행나무가 보이는 찻집의 풍경을 벗 삼아서, 이문세의 주옥같은 가을 노래도 들으면서요... 김설하시인의 <가을이 자꾸만 깊어가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을이 자꾸만 깊어가네 – 김설하


저마다 고운 빛깔로 익어

손짓하는 가을 떠날 때


떠나더라도 우리는 이토록 따숩게 손잡을 때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


부드러운 가슴 열어 품어줄 것만 같은 구름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동공에 빼곡히 담고 또 담네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해도

아직은 떠나보낼 수 없는 인연들 갈꽃의

소담한 웃음 탐스럽게 익어 유혹하는 열매

눈길 머무는 곳마다 심장 뛰는 소리 들켜가며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어

가슴에 가을을 적고 또 적네

11.11 가을이 깊어가네.jpg

만경, 어느 길가의 가을도 깊어만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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