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2 권대웅 <하늘색 나무대문 집>
태어날 때는 그곳이 어디인 줄 모르지요. 인생의 황혼기를 앞두고 이쯤에서 멈춰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요. 오늘 저는 그런 곳으로 이사를 갑니다. 넉넉 잡고 10년 정도 정 들여 살고 싶은 곳이지요. 하긴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사이니, 숫자로 말하기는 섣부르지만, 어쨌든 그 정도는 살아봐야 그곳을 알겠더라고요.
학원업도 10년이 넘어설 때쯤 가장 최고의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을 키우고, 다른 귀한 자녀들을 교육하고, 더불어 지역사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이 보이기 시작했지요. 색다른 삶을 위해 책방업 4년 정도 워밍업을 했으니, 아마도 새 책방의 이름 ‘봄날의 산책 2호점’이라는 명패를 다는데, 다소 여유로울 수 있겠거니 생각합니다.
현재 1호점의 공간은 3평인데요. 2호점의 공간은 아마도 20여 평 될 듯해요. 실주거를 함께 할 예정이라, 그 공간도 다소 작지만, 그래도 독서실, 회의실 등을 만들어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 집 안방처럼 들고 날 수 있는 책방으로 만들어볼까 합니다. 말랭이책방의 첫 번째 모토도, ‘모두가 주인인 책방’이었으니, 다소 넓어진 공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주인인 책방, 군산의 인문을 표방하는 책방, 특히 근대역사거리에 꼭 어울리는 책방의 색으로서 채워 보겠습니다. 일단 이사부터 하고 말입니다.^^
혹시나 오다가다, 빈 항아리, 빈 화분, 오래된 의자, 책상 등을 포함하여 쓸만한 물건 보시거든 연락도 주시고요. 저는 새 물건 살 여유도 없고 그럴만한 마음도 덜하여, 재활용, 재사용할 물건들로 제 스타일대로 꾸미며, 책방 건사하겠습니다. 혹시라도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물건사기보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에 더 사용하고 싶으니까요.
이사한 후 무조건 가을 산책을 가야겠습니다. 언젠가 책방 3호점 <봄날의 산책>을 꿈꾸면서요..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니, 상큼하고 좋은 데요. 꿈은 꾸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법, 꿈은 꾼만큼 이루어지는 법. 우리 모두 함께 꿈 꾸워 보시게요.^^
권대웅시인의 <하늘색 나무 대문집>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하늘색 나무대문 집 – 권대웅
십일월의 집에 살았습니다
종점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을 올라
얼키설키 모인 집들과 몇 개의 텃밭을 지나
막다른 골목 계단 맨 끝 문간방
그 집에서 오랫동안 가을을 바라다보았습니다
창문 밑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나팔꽃, 해바라기
저녁의 적막을 어루만져 주던 가문비나무
가끔 아주까리 넓은 잎사귀가 슬픔을 가려주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담장 너머 이어지던 지붕과 지붕들
그 위로 햇빛이 만들어놓던 빛나던 개울들
황금여울을 따라 저녁의 끝까지 갔다 왔습니다
돌아오면 처마 밑 어둠이 뚝뚝 떨어지고
어디선가 쌀 일구는 소리 너무 커 적막해라
눈을 감고 술렁이는 내 마음속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리운 것이 너무 많아 불을 켜기 힘든 저녁
하늘색나무대문을 열고 나가
해바라기가 서 있던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나팔꽃 까만 눈동자처럼 한 시절 야물딱지게 맺히고 싶었습니다
새집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