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21 텃밭이야기 2화
지난주에 이어 텃밭에 다시 모였다.
뿌렸놨던 퇴비는 어느새 몇몇 장정들의 품앗이로 대지의 품속에 자리를 틀었다. 그 땅이 어찌나 살쪄보이던지.
마치 봄쑥과 쌀가루만을 버물러서 야트막한 찜 솥에 앉히면 고실고실 쑥떡으로 나와 입맛을 다시게 하는 쑥버물떡처럼 기특하고 맛있게 보였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누구나 말하지만 그 중에서도 봄길을 만드는 사람만이 희망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군산에 정착한지 18년 차, 어느해 봄.
인생의 선배인 한 지인이 나를 두고 말했다.
"선생님은 정호승의 봄길에 나오는 사람 같아요."
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때는 정호승 시로서 '수선화에게' 정도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봄길'은 내 삶의 이정표같은 시가 되었다.
오늘도 텃밭에는 봄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였다. 텃밭살이 3년차의 내공을 가진 사람들 속에 쭈삣거리며 틈새를 노리는 신참지기도 있다. 이제는 누구 밭 할 것없이 고랑을 만들어주기에 한없는 애정과 아량을 붓는다.
게으른 나는 오늘도 군소리만 했다.
갈퀴하나 들지 않고. "코알라님, 라면은 언제 먹나요?"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라면을 맡겨놨나. 땅 주인도 아니면서 암암리에 장땡이만 부리네."라고.
짐짓 모른체 하고 라면 끓일 국물 옆에가서 가경네가 구워온 계란을 두개나 먼저 먹었다.
진짜 맛이 있었다. 올해 텃밭의 그림을 그려보고 있던 차에, 이번에는 길가에 해바리기를 심어야겠다고 했다.
바로 맞장구쳤다. "아, 글 쓸 수 있는 그림이 나오네요. 조아조아요."
심신 미약한 내 글에 벌써부터 비타민과 원기 회복제가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10가구의 사람들이 30두렁 정도의 밭에 자기색깔의 작물을 키울것이다.
3년째 나는 효자들의 큰 복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효자는 뭐니뭐니해도 '고추형제'들이다.
아직까지 이름도 외우지 못한 초보지만 고추의 모양새는 구별하게 됐다.
청양고추, 청고추, 오이고추 등.각각의 쓰임새가 달라 어느 것 하나 빼 놓지 않고 다 심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욕심 많게 여섯 두렁을 차지하니 왠지 미안했다.
"형수, 제발 이곳에는 호박 심지 마요. 작년에 호박 넝쿨에 치여서 우리 것들 다 죽었어요." 대준님 부탁이었다. 작년에 심은 호박을 다시 심어야 되는데~~ 어쩌나.
초보 딱지 들이밀고, 모른체 하기에는 벌써 3년차 농부아닌가. 이번에는 귀 담아 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땅질이 좀 더 좋은 곳에는 무엇이든 자리를 잘 잡는다. 일단 그곳에 감자씨를 심어야겠다.
먹다 말고 한 쪽으로 팽겨쳐진 감자를 보면 어느새 뾰족히 올라온 싹이 보인다. 그것이 감자의 눈이란 것을 안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감자 하나에 그렇게 많은 감자눈이 있다니, 참 세상만물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다.
부지런한 지인들은 벌써 두렁위에 비닐도 덮고, 감자씨도 심었다.
내 두렁에 무엇을 심을지는 노트에 그려보고 재어보는 재미를 느낀 후에야 결정 될것이다.
그 무엇을 심어도 걱정 할 것이 없는 든든한 빽이 있으니까. 바로 남편이다.
첫 삽을 뜨기에는 이론도 박사, 실기도 박사. 그러나 작물 키우는 과정과 결실은 당연코 내가 박사다. 이렇게 부족한 것을 채워가는 것이 부부의 삶인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라면 한그룻을 맛난 김치와 삶은 계란과 함께 먹고나니 봄 햇살의 줄기가 하나에서 수천개의 스펙트럼으로 퍼졌나갔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 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있고 그대들도 있다.
자, 이제 여러분은 올해 텃밭 세상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만나게 될 것이다.
읽을 때마다, 100원이상 저축하여 농사 끝나는 날 '걸판지게 한번 먹고 놀아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