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310

2023.2.22 길상호 <밥그릇식구>

by 박모니카

혹시 당신이 결혼한 사람이든 혼자 사는 사람이든 소유한 물건 중에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본디 물건에 집착하는 맘이 없어서 그 흔한 반지도 하지 않아요(묵주를 제외하고요^^) 그런데 누군가의 선물을 받았을 때 의외로 무늬 없는 담백한 사기그릇을 보면 그렇게 맘이 좋더라구요. 25년 전 결혼할 때 엄마가 사준 옥색빛이 감도는 부부 밥공기와 사기그릇,이모의 사랑을 싣고 멀리서 물건너 온 핑크빛 뷔페용 접시, 10여년 전, 한 후배에게서 받은 생선모양의 하얀접시 등은 아직도 제 눈에 진한 추억을 가져다주는 그릇들이예요. 그런데요, 어제는 지역의 한 어르신이 제게 밥그릇과 국그릇을 주셨어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랬어요.


“내가 젊었을 때 누군가에게서 놋그릇을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그다음 해에 내가 교수가 되었지. 이 그릇을 받고 올해도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라네. 밥이 하늘 아닌가.”

이런 감동의 물결이 또 있을까요. 저는 바로 대답했지요.


“이 밥그릇에 따뜻한 맛있는 밥 가득 채워서 대접할께요. 정말 좋은 일만 생길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릇들이 가져와서 자세히 바라보니 어린아이가 그렸을법한 순진한 꽃그림이 있더군요. 수만가지 물건으로 넘치는 요즘세상, 이 그릇에 누군가의 마음이 씌워지지 않았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돌아보니 제 바로 옆에도 널부러져 있는 잡동사니들이 보이길래, 수업 도중 느낌표 한마디씩을 붙여주었답니다. 오늘 당신 곁에 있는 물건들에게 사랑의 징표를 건네보세요. 혹시 알아요? 언젠가 신표(信標)가 되어 당신 곁에 있을지도 몰라요. 오늘의 시는 길상호 시인의 <밥그릇식구>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밥그릇 식구 - 길상호


처마 밑에 놓인 밥그릇

아침엔 까치가 기웃대더니

콩새도 콩콩 깨금발로 다가와

재빨리 한 입,

빗방울이 먹다 간 한쪽은

팅팅 불어 못 먹을 것 같은데

햇살이 더운 혓바닥으로 쓰윽,

저마다 배를 불린다

정작 그릇 주인인 고양이는

잠을 자다 뒤늦게 나와

구석에 남은 몇 알로

공복을 누르지 못해 야아옹,

뒷마당으로 사라지고

고양이가 흘리고 간 한 알

개미들이 기다랗게 줄을 선다

텃밭에서 돌아온 할아버지

텅 빈 밥그릇을 보고 허허,

또 한 그릇 덜어낸 사료 포대처럼

조금 더 허리가 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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