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59

2023.6.16 김용택 <푸른나무>

by 박모니카

‘이 아침이 없었더라면...’을 중얼거리네요. 어둠을 안고 집에 올 때까지, 그 감정만 생각한다면 아마도 오늘이란 말을 쓸 수 없겠지요. 일정표를 보니 ‘으흠 오늘도 이런 일들이 나를 기다리는 구나’ 싶어 바로 정좌를 하게 됩니다. 제가 찾을 만남 중에 대야장터가 있군요. 장터일 끝자리 수가 1과 6일이어서 물건구경 사람구경 하러 가는데요, 특별히 장터미술관에서 열리는 음악회구경가요. 장터라는 문화공간 속에 설치된 미술관, 또 그와 더불어 연주될 음악회가 매우 궁금합니다. 음악하면 ‘소리’, 소리하면 사람의 ’목소리’가 떠오르네요. 어제는 특별히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한 사람이 전한 목소리에는 이런 말이 있었죠. ‘얼마나 당신이 그리우면 전화기가 저절로 전화를 하겠는가’ 들을 때는 “시를 쓰고 있네”라고 말했지만 글쓰기 모임부터 저녁에 만난 지인에게까지 이 표현을 전한 걸 보면 진한 감동이 있었나 봅니다. 그 목소리는 매양 듣는 터라 특별한 줄 몰랐던 게지요. 또 하나의 목소리는 일부러 눈을 감고 들었지요. 김용택 시인의 시 한 수를 낭송하던 목소리. 신기하게 목소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 것 같은 신비한 단서입니다. 어제 낭송에서 들려온 그분의 목소리가 좋아서 늦은 밤 또 다른 시인의 시를 읽을 때 저도 따라쟁이가 되었답니다. 때마침 가수 최백호(EBS 음악공감)의 목소리, 거친 듯 쓸쓸한 듯, 가을 낙엽처럼 바람을 쓸고 가는 목소리로 지친 하루가 녹아드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드라마를 멀리한 지 수년째이지만 언젠가 ‘너의 목소리’라는 드라마도 있었죠. 금요일, 당신만의 목소리로 울리는 금요일 종소리, 부디 맑고 아름다운 소리로 사랑하는 사람부터 이름 모를 풀꽃에게 까지 전해지길 바랍니다. 오늘은 김용택 시인의 <푸른 나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푸른 나무 - 김용택(1948-현, 전북임실)


오늘도 집에 가다

나는 네 뿌리에 앉아

서늘한 네 몸에 더운 내 몸을 기댄다

토끼풀꽃 애기똥풀꽃이 지더니

들판은 푸르고

엉겅퀴꽃 앵초꽃이 피었구나

좋다

네 몸에 내 몸을 기대고 앉아

저 꽃 저 들을 보니 오늘은 참 좋다

이 세상을 살아오다 누구나 한번쯤

인생의 허무를 느낄 때가 있었듯이

내 청춘도 까닭없이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냥 외로웠다 이유 없이 슬펐다

까닭없이 죽고 싶었다

그러던 오늘 같은 어느날

텅 빈 네 그늘 아래 들어

서늘한 네 몸에 더운 내 몸을 기댔다

아, 서늘하게 식어오던 내 청춘의 모서리에 풀꽃이 피고

눈 들어 너의 그 수많은 잎들을 나는 보았다

온몸에 바람이 불고

살아보라 살아보라 살아보라

나뭇잎들이 수없이 흔들렸다

살고 싶었다

지금도 피는 저 엉겅퀴와 망초꽃을

처음 보던 날이었다

오늘도 나는 혼자 집에 가다

네 몸에 내 몸을 기대고 네 뿌리에 앉는다

이 세상 어느 끝으로 뻗어

이 세상 어느 끝에 닿아 있을 것만 같은

네 가지 가지에 눈을 주고

이 세상 어둠 속을 하얗게 뻗어

어둠의 끝에 가 닿을 것만 같은

네 뿌리에 앉아

나는 내 눈과 내 몸을 식힌다.

6.16푸른나무1.jpg 책방 옆 길 나무들
6.16푸른나무2.jpg 책방 뒷 길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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