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엔 감동이 있는 이유
소중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곤 한다. 고마움을 표현할 때도, 정말 잘못한 일을 저질러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을 때도 펜과 종이를 든다. 편지를 쓰기까지의 과정은 수고스럽다.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편지지를 골라야 하고 봉투엔 깔끔한 스티커를 붙이거나 입구가 떨어지지 않게 풀칠을 해도 해야 하니까.
그래서일까? 요즘은 편지를 쓰는 일을 보기 어렵다. 지금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5G급 속도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원하는 말을 전달하기 위해 대신 고민해 주고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되는 세상을 보며 감탄한다. 하지만 왠지 감동은 없다.
교실은 감동이 넘친다. 아이들은 편지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꼬깃꼬깃한 종이에 한 참을 들여다보아야 뜻을 알 수 있을 만큼 날아다니는 글씨와 쳇 GPT도 따라하지 못할 부정확한 맞춤법까지.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데 애를 먹기도 하지만 예측할 새 없이 튀어나오는 틀린 맞춤법이 입꼬리를 올라가게 만든다.
“선생님, 잘생겼어요.”
달콤한 칭찬과 함께 “다음 시간엔 놀이를 했으면 좋겠다”던지 “자유시간을 가졌으면 한다”라고 적기도 한다. 칭찬을 대가로 한 요구사항이다. 나는 아이들의 시커먼 속내가 드러나는 글도 참 좋다. 교실에선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편리한 수단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편지를 쓴다. 종이에 자신의 생각을 담고 마음을 적어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일. 그런 아주 사소한 고백들 덕분에 감동하고 힘을 얻고 교실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채워간다.
아이들이 커서도 편지를 쓸 줄 아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수고스럽게 고백하며 마음이 단단해지길. 누군가와 다투거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편지를 띄우는 일이 되길. 때때로 주변에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