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불 밖으로 나와야 할 때
동물들이 숲 속의 거짓말쟁이라니!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발견되는 동물들의 생존본능을 거짓말로 표현한 것이 흥미로워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의 원래 제목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일본어 원제는 'ウソをつく生きものたち(우소오츠쿠이키모노타치)'로 ウソをつく는 '거짓말을 하다'라는 뜻으로 주로 뒤에 소년이란 뜻의 'こども'를 붙여 양치기소년(ウソをつくこども)이란 표현으로 쓰인다.
그런데 그 소년이란 단어 대신 '살아있는 것, 생물'이라는 뜻의 복수형인 生きものたち를 붙여 '양치기생물들'이란 제목이 탄생한 것이다. 원제를 알고 나니 어떤 이야기가 담긴 책일지 더 두근두근 하였다.
책은 다양한 동물들의 흥미로운 '의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의태(mimicry)란 '생물이 다른 생물이나 그 외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 다양한 사물의 모습을 유사하게 흉내는 것'이다(책 속 정의). 작은 곤충부터 새, 그리고 포유류의 다양한 의태의 방법이 소개되어 생태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내용은 외국 동물 사례가 대부분이나 일본인 저자가 일본의 예를 든 동물들 중 한국에도 살아가는 새와 곤충들이 있어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반가운 마음이 드는 점도 책을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다.
가장 적합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의 인용구로 시작하는 책은 동물이 살아남기 위해 생존에 유리한 방식을 DNA를 통해 후대로 물려주며 진화했다는 이야기를 다룬다. 적자생존의 방식이 유전적 성질에 녹아들어 가 후대에까지 이어지는 점이 놀랍다.
자신이 가진 한계를 보완해 가는 동물들의 지혜를 보며 '나에게도 이런 지혜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저절로 던져진다. 책을 읽어가며 나는 어떤 '거짓말'로 현생을 버텨야 할지 생각에 잠기느라 책을 자주 내려놓게 되었다.
p.101
생물 세계는 그야말로 속고 속이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누가 더 잘 속이느냐'가 생존을 좌우한다. 더 거짓말을 잘하기 위해 진화하는 과정은 치열하면서도 신비롭다.
숲 속 먹이 피라미드의 아래층을 차지하는 토끼는 일부러 자신의 거처에서 먼 곳까지 발자국을 만들어 여우를 속인다. 호랑나비 어린 애벌레는 갈색 바탕에 흰 점이 섞여 있는 몸으로 벌레똥과 비슷한 색과 모양으로 진화하여 자신을 보호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하게 토끼나 어린 애벌레같이 약한 동물들이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위장하고 의태하는 기술이 발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태계에서는 포식자도 피식자도 모두 속임수를 쓰며 살아간다.
약한 동물뿐 아니라 충분히 강한 동물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게 진화하였다. 약육강식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호랑이는 더 완벽한 사냥을 하기 위해 풀에 몸을 잘 숨기도록 몸 전체에 긴 줄무늬를 가진다(호랑이의 노란색은 시력이 안 좋은 초식동물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난초사마귀는 이미 뛰어난 사냥꾼이지만 더 잘 사냥하기 위해 애벌레부터 성충까지 난초꽃을 닮게 진화하였다.
이런 의태의 모습들을 읽고 있자니 생태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 각자에게 주어진 일상을 전력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이 존경스러웠다. 밖은 춥다며 겨울이불이 주는 포근함과 따뜻함에 만족하고 행복해하고 있는 내가 잠시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p.64
의태가 그토록 생존에 도움이 된다면 의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다.
동물에게 '의태'란 생존에 있어 선택이 아닌 꼭 해야 하는 의무다. 그래야 치열한 생태계에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아뜰리에를 운영했던 지난 3년을 떠올리면 '좀 더 치열하게 해 볼걸'하는 후회가 들 때가 있다.
아뜰리에는 나만의 작은 아지트로 시작해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할 뻔했던 나의 첫 공간이다. 아뜰리에를 운영하며 동물들의 '의태'와 같이 꼭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일들을 참 많이 안 했다고 생각한다. 거만하고 멋모르던 시간들이었다.
아뜰리에는 꽃과 식물을 작업하고 판매하는 공방과 소매점 중간의 성격이었다. 꽃집이었지만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싶지 않다는 어설픈 생각에 꽃다발 포장을 아주 간소화하여 판매하였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식물과 화분은 충전재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택배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물론 꽃다발은 꽃에 더 많은 신경을 썼고, 식물은 최대한 직접 배달하는 방법으로 운영했으며 감사하게도 이를 이해해 주는 고객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자영업자로서 생존 관점에서 보면 참 어리석은 짓이었다.
돌이켜보면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면 쓰레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포장, 배달 방식을 연구해서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내용을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인 내가 부담했어야 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다양한 시도를 통해 최적의 방법을 찾지 못한 안일했던 과거의 내가 아쉽기만 하다. 동물들이 후손에게 물려줄 다양한 생존전략을 시도하는 점에서 배워야겠다. 운영하고 싶은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현재 생태계에 최대한 적응하고 이용가능한 것들로 '나만의 수'를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너무 어렵지만 지금이라도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식물리에'는 도태되어 버릴 것이다.
동물들의 생존전략인 '의태'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 흥미로웠는데, 책에는 주로 '뮐러의태'와 '베이츠의태'가 소개된다.
뮐러의태는 조상 대대로 포식자에게 학습시켜 온 '나는 먹어도 맛이 없어요'를 몸의 독특한 무늬나 경계색으로 알리는 방법이다. 포식자는 피식자의 특정 무늬나 알록달록한 색을 보고 구분하여 선별하여 먹게 된다.
베이츠의태는 앞서 말한 점을 이용하여 독이 없는 동물이 독이 있는 동물의 색이나 형태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포식자를 속이는 것이다. 독이 없는 어린 구렁이는 독이 있는 살모사의 무늬를 모방하여 포식자를 속인다.
p.165
침팬지의 사회적 거짓말
이처럼 '의태'는 대개 사냥감을 더 잘 잡거나 또는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해 같은 종이 아닌 다른 종을 속이기 위한 것이다. 저자는 동물들의 이런 모습을 넓은 의미의 거짓말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어떤 동물들은 우리가 아는 그 거짓말인 속이기 위한 거짓말을 한다. 동물 중 인간처럼 사회성을 보이는 동물일수록 같은 종을 속이기 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침팬지 집단에서 볼 수 있는 수컷 침팬지들의 눈치게임이 있다. 무리 지어 사는 침팬지들 중 수컷 침팬지는 집단 내에서 서열이 정해지는데, 서열이 낮은 수컷은 서열이 높은 수컷의 눈치를 보며 털을 골라주거나 끙끙대는 울음소리로 상대의 서열이 높음을 인정하는 사교적인 행동을 보인다.
또한 서열이 높은 수컷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다리를 다친 척하거나, 암컷과 교미하기 위해 몰래 신호를 주고받는 연구 사례가 몹시 신기했다.
단순한 의태에서부터 사회적인 거짓말까지 동물의 거짓말 사례를 읽다 보니 지금껏 생각해 왔던 것보다 동물들이 꽤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찰스 다윈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특성이다.'라는 문장을 인용한다. 더불어 동물들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인간이 노력해야 한다는 언급을 한다.
아마도 저자는 주어진 것들로 치열하게 생존해 나가는 동물들을 보며 너무 풍족해져서 감사함을 잊은 인간사회에 경고를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책을 통해 나태해진 지금의 생활을 청산하고 더 바지런히 하루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약육강식의 생존 세계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말이다.
양치기 동물들 덕에 이불을 박차고 나와서 한 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더 잘 준비할 수 있는 연말이 될 것 같다. 모두 행복하고 뜻깊은 연말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