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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Sep 06. 2024

검은 고양이와 자전거와 크로플 10화

우연히, 카페 한 벽돌

전거를 타고 시내를 지나면서, 정의는 여유로운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래, 맞아. 자전거야. 그래." 도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수들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피부에 시원함을 안겨주었다. 여름의 열기가 한풀 꺾이고, 저물어 가는 태양의 붉은 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으며, 도심의 풍경은 화려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상점과 사람들이 어우러진 그 곳에 정의는 있었다.


정의는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가슴 속에서 자아내는 자유로움과 흥분을 느꼈다. 오늘의 목적지는 티비에서 본 유명 크로플 가게다. 크로플은 정의가 최근에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이런 날씨와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좋은 날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 순간 우연히 길가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인수…?” 정의는 자전거를 멈추며 깜짝 놀랐다. 본 지는 뜸한 얼굴이었지만 이름이 먼저 기억이 났다. 아, 맞다. 중학교 때...인수는 중학교 시절의 반친구로, 중학교를 마친 후에는 본 적이 없던 얼굴이었다. 정의는 자전거에서 내려 인수에게 다가갔다. 인수는 이미 반가운 표정을 준비하고 정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의야! 정말 오랜만이야!” 인수가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어? 날 기억해?" "당연하지. 정의를 기억 못하면  어떡하냐." 그 웃음 속에는 중학교 시절의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기쁨이 담겨 있었다. 인수는 여전히 키가 크다 못해 더 커진 것 같았다. 늘씬하며 새하얀 얼굴이 여전히 인상적이다. 그때와 똑같이 인기의 중심에 있을 것 같았고, 그 때처럼 지금도 그 자신이 인기 있음을 잘 모를 것 같았다. 정의는 그런 인수를 보며 다시 한 번 그 시절의 향수를 느꼈다. 서로 비슷한 타입의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잘 어울렸고, 그 유대감이 그 시절의 추억으로 다시 살아났다.     


“안녕, 인수! 진짜 오랜만이야.” 정의는 자전거를 끌어옆에 세우며 물어보았다. 인수는 반갑게 웃으며 자신의 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인수는 정의의 자전거를 힐긋 보았다. "응. 내 자전거." "멋지네. 너랑 잘 어울린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걸. "그런데 넌 여기서 뭐해?"

“아, 나 지금 이모 카페에서 알바하고 있어. 카페의 분위기가 정말 예쁘지 않아? 이 카페는 내가 이모랑 같이 꾸민 곳이야. 처음에는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사기 위해 알바를 시작했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직접 카페 일을 하다 보니, 이 일이 내 천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세히 보니 인수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갈색 빛이 도는 두툼한 재질의 단단해 보이는 앞치마. "재밌어."


정의는 인수의 말에 흥미를 느끼며 인수의 보이는 카페 내부를 넘겨 살펴보았다. 인수가 일하는 카페는 회색의 우중충한 건물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 카페만 오롯하게 다른 느낌을 띠고 있었다. 빨간 벽돌로 예쁘게 포장된 카페는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창가에는 화사한 꽃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그 꽃들은 여름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건물의 외부와 내부가 너무나 다른 느낌이어서 오히려 배신감이 드는 것만 같은 놀라움이었다. "배신감이 드네." "응? 뭐가?" "아냐, 멋지다고."

"들어와 볼래?" "그래도 돼." 정의의 놀란 표정에 인수는 화사한 그 웃음을 보여주었다. 인수의 웃음은 중학교 때 그대로였다. "당연하지. 카페에 어서 들어오셔요." 인수는 과장된 몸짓으로 귀족을 모시듯 정의를 안내했다. 그리고 그런 과장됨에 물러설 정의가 아니었다. 엣헴. 헛기침라도 해야 할 듯이 거창하게 들어가야 하나 하던 정의는 카페 문을 열자 마자 장난기를 잃어버리고 순수하게 놀라버렸다.


카페의 내부는 정의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지게 꾸며져 있었다. 밝은 조명 아래, 카페의 벽면은 자연스럽게 나무와 벽돌이 어우러져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바닥에 아름다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벽에는 핸드메이드로 만든 예쁜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정의는 이런 아름다운 공간에서 인수가 일하고 있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와, 정말 예쁘다. 이렇게 잘 꾸며놨구나. 네가 이렇게 직접 꾸몄다니 대단해!” 정의는 칭찬하며 카페 내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인수는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응? 내가 직접 꾸몄다고 말했었나?" "그치? 그럴 것 같았어." 넘겨 짚은 정의의 말에 인수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아, 이 녀석. 너무 흘리는데.


“고마워, 정의! 카페 일을 하면서 손님들과 대화하는 것도 좋고, 내가 만든 음료나 디저트를 좋아해 주는 걸 보면 정말 보람이 들어.” "카페 알바를 해 보고 싶었어?" "아니, 그건 아니라..." 인수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으며, 카페 안을 둘러보는 정의를 자연스레 안내했다. "원래는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사기 위해 알바를 시작했어. " "그런데, 이렇게 일을 하다 보니 나에게 맞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


정의는 구경을 하다 말고 인수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단정하고 잘 생긴 얼굴. 그 얼굴에 머뭇거림이나 혼란스러움은 없었다. 정의네 반의 많은 수가 애써 숨기고 있는 그 병. 고교병. 인수는 약을 찾아냈나 보다. "그랬구나." 정의는 인수의 말을 들으며 그 동안 자신이 해왔던 일들,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수의 눈빛과 열정을 보면서 정의는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이 과연 자신에게 맞는 것인지, 혹은 자신이 정말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난 뭘 좋아하는 거지? 크로플인가?" 크로플은 정의가 이렇게 불타오르게 만든 것이긴 했지만, 인생을 바칠 것이라기엔 뭔가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렇구나." 정의는 왠지 인수의 맑고 굳은 두 눈을 계속 보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아, 고개를 돌려 벽면의 인테리어를 보았다. 누군가가 열정을 바치고 바쳐 애써 꾸며야 할 것 같은 고풍스러운 라인을 이어 카페 곳곳은 그야말로 고풍스러웠다. 이런 카페를 운영하신다는 인수의 이모도 궁금해졌다. 어떤 분일까. 나도 그 분을 보면, 내 삶의 방향을 찾아낼 수 있을까. 정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인수와의 대화 속에서 정의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아무튼, 인수와 이야기하니까 많은 생각이 드네. 고맙다.” 정의는 웃으며 말했다. 인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저기, 이거." 인수가 내민 종이 포장 안에는 언제 담았는지 마들렌이 담겨 있었다. "이거, 살게. 얼마야?" "아냐." 가방을 뒤져 지갑을 꺼내려는 정의의 손을 인수가 잡았다. 인수의 손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이 녀석. 이렇게 흘리고 다니니. "다음에 한번 커피 마시러 와. 나 요즘 커피도 내려보고 있어." "정말?" "응." 응, 그럴게. "응, 그럴게."

"언제든지 들러서 얘기하자." 정의를 배웅하는 인수에게 저녁 늦은 햇빛이 어렸다. 눈부시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크로플이 정의더러 인수를 만나게 한 걸까. 정의는 인수를 뒤로 마음속으로 ‘오늘 하루는 정말 뜻깊은 날이구나.’라고 느꼈다.     


정의는 다시 페달에 힘을 주었다. 크로플 가게로 향하는 자전거를 타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길인지, 혹시 더 나은 길이 있는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정의는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오늘 하루의 특별함과 자아에 대한 고민을 함께 안고 가기로 했다.     


여전히 저물어 가는 햇살과 함께 하는 자전거 여행은 정의에게 새로운 생각과 발견을 선사해 주었다. 인수와의 재회가 가져다준 깊은 감동과 앞으로의 여정을 향한 기대감 속에서 정의는 크로플 가게를 향해 다시 힘차게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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