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호 Sep 07. 2024

검은 고양이와 자전거와 크로플 11화

공원의 음악과 생각의 정의

정의는 자전거를 타고 도시의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골목 끝에는 그녀가 기다리던 크로플 가게가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부드러운 손길처럼 그녀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고, 오후의 황금빛 햇살이 따스하게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시원한 공기가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자연스럽게 돌려진 시선은 어느새 작은 공원에 머물렀고, 그곳에서는 어딘가에서부터 기분 좋은 음률이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음악은 그녀의 귀를 부드럽게 간질였다. 마치 꿈속에서 들리는 멜로디처럼, 음악은 몽환적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자전거를 타고 공원의 초록빛 나무들 사이를 지나자, 음악은 더욱 뚜렷하게 들려왔다. 그 선율은 공원의 고요한 공기 속에 은은하게 스며들어,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려지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공원 입구에 도착한 정의는 자전거에서 내려, 발걸음을 가볍게 옮기며 자갈길 위를 걸었다. 자갈들이 사르르 소리를 내고, 바람과 햇살이 그녀를 감싸며, 마치 공기 속에 녹아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공원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그녀의 눈앞에는 꿈결처럼 아득한 광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작은 무대 앞에 모여 있었고, 그들의 표정은 음악에 몰두한 채 환상적이었다. 그 중심부에는 밴드 '미드나잇 에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뭘까, 이 사람들은." 정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무대와 관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기타를 든 여성, 커다란 키에 베이스를 연주하는 또 다른 여성, 조용한 듯 보이지만 보컬로 무대를 장악하는 여성, 그리고 드럼을 치며 노래하는 남성. 그들의 음악은 공원 안의 공기와 하나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은은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정의가 무대 가까이 다가가면서 사람들 사이로 한 소녀가 눈에 띄었다. 조용한 분위기와 달리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여고생으로 보이는 소녀였다. 그녀는 음악에 푹 빠져 있는 듯하면서도, 주변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정의는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저 아이는 누구지? 왠지 신경 쓰이네..." 정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눈길을 주었다. 하지만 이내 눈길을 돌린 순간, 배예서는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마치 환영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소녀에 대해 정의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런 정의의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밴드의 준비가 끝난 듯 보였다. "갑니다. 자, Play!" 곱상하게 생긴 것 같은 남자는 드럼 스틱을 두드리며 공연의 재개를 선언했다. 첫 번째 곡이 시작되자, 여성 보컬의 목소리는 마치 꿈결 속 속삭임처럼 공기 중에 흩어졌다. 기타의 선율은 그 속삭임을 따라 하늘로 피어오르고, 정의는 그 음악 속에 스며들었다. 드럼의 리듬은 그녀의 심장 박동과 하나가 되어 울렸고, 가사의 단어들은 물안개처럼 그녀의 감정 속에 흩어졌다. 이 모든 것이 몽환적인 흐름 속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듯했고, 공원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해졌다. "이게 뭐지." 뭘까. 즐겨듣는 노래 없이 노래라고는 유명한 아이돌의 노래를 친구들 따라 듣는 것밖에 모르는 정의는 라이브 공연이 주는 압도감에 푸욱 빠지는 중이었다.


두 번째 곡이 시작되자, 공원의 분위기는 더욱 꿈결 같아졌다. 기타와 베이스가 무지갯빛 물결처럼 퍼져나갔고, 드럼의 강렬한 박자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춤추게 만들었다. 정의는 그 활기찬 리듬 속에서 자신도 함께 춤을 추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왠지 이대로 춤을 춰도 될 것 같은걸. 그런 생각을 했지만 하지는 않았다. 이 곡이 멈추지는 않을까 해서.



주변의 웃음소리와 대화, 그리고 음악의 선율이 몽실몽실하게 어우러지며, 공원의 공기는 마법처럼 변모했다. 공원은 이제 현실이 아닌, 음악과 감정이 공명하는 환상의 세계가 되었다. 정의는 그 순간, 이 모든 것이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어우러지는 하나의 이야기임을 느끼며 음악에 자신을 맡겼다.


정의는 음악 속에서 생각에 잠겼다. 멜로디가 그녀의 마음속에 스며들며 따뜻한 물결처럼 가슴을 채웠다. "이 노래… 마음이 편안해져..."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랐다.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음악과 함께 천천히 피어오르며, 오랫동안 숨어 있던 따뜻한 감동이 그녀의 마음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다가와야 할 순간처럼 공연은 끝날 무렵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그녀를 꿈에서 현실로 부드럽게 이끌었다. 정의는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이제 크로플 가게로 가야 한다는 조바심이 그녀의 마음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 이럴 시간이 아니지!" 정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전거로 향했다. 차분한 음색으로 말하려 했지만, 자전거를 세워둔 나무 둔치로 돌아가는 정의의 발걸음에는 서두름이 있었다. 서두름과 함께 경쾌함도 어디론가부터 함께하고 있었다. 음악의 여운이 그녀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고, 마지막 선율이 마음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자전거에 올라타며 정의의 귀에는 여전히 공원에서 들었던 음악의 잔향이 은은하게 울리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노래였어..." 그녀는 혼잣말처럼 속삭이며, 페달을 밟는 힘이 더욱 가벼워졌다. "음, 음음..."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로 따라하는 것은 조금 전 들은 그 공연의 노래였다. 그 노래는 마치 따스한 여름 바람처럼 그녀의 마음을 간지럽히며, 몸속 깊은 곳에서 에너지를 솟아오르게 했다. 공원의 경계가 점점 멀어지면서 도시의 소음이 그녀를 감쌌지만, 그 속에서도 음악의 여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마음속에서 부드럽게 흐르며,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페달을 밟으며, 페달을 밟은 발에 닿는 힘을 느끼며 정의는 공원에서의 순간들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들이 계속 이어질 것 같은 기대감에 사로잡혀, 새로운 꿈을 꾸는 듯한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아갔다.

이전 11화 검은 고양이와 자전거와 크로플 10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