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해가 바뀌었다.
스물 넷이 되었다.
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개강이 보름 남았다.
한심함이 가득 올라왔다.
발끝부터 우울감이 번졌다.
전역 후 복학하고 열심히 살자고 마음먹었던 스물 셋은,
살면서 가장 초라한 기억으로 남았다.
공부도, 인간관계도, 미래도.
아무것도 발전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제자리 걸음이었다.
차라리 군대가 나았다.
2014년은 또렷한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이도저도 아닌
투명인간과 잉여인간 사이의 중점.
시간을 지우거나 버리고 싶었다.
이대로 새학기를 시작한다면,
후회와 자괴감으로 범벅될 게 뻔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 자전거 여행이 좋을 것 같았다.
자전거는 있고,
마침 주말 알바도 그만뒀다.
보증금으로 받은
30만원의 여유도 있었다.
작년 여름,
친구가 완주했다는 국토종주가 떠올랐다.
정해진 길만 따라 완주하면,
인증서와 메달도 준다고 했다.
정해진 길만 따라가면 된다.
조금 안심이 됐다.
그런데 시간이 없었다. 오늘은 화요일.
내일부터 수목금, 설날 연휴였다.
오늘 인천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알아봤다.
오후 6시 일반고속.
한 자리가 남아 있었다.
한 자리만 남아있다는 건 왠지,
파울로 코엘료의 말처럼 '표지' 같았다.
바로 예약을 했다.
표지를 놓칠 수는 없었다.
지금은 오후 두 시.
일단 준비물을 챙겨야 했다.
작년에 국토종주를 완주한
종혁이를 데리고 홈플러스에 갔다.
미니 트윅스 한봉지, 초콜릿 다섯 알,
크런키 두 통, 다이제 하나.
딱히 생각하고 간 게 아니라,
마땅히 살 게 없었다.
이십 분을 걸어 도착한 홈플러스 쇼핑은
십 분만에 끝났다.
종혁이는 종주를 하면서 느꼈던 것들과 유용한 것들을 자세히 알려줬다.
종혁이는 알바를 하러 떠나며,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본격적으로 채비를 했다.
여벌의 옷, 힙색과 백팩, 이어폰, 약간의 현금 등.
삼십 분도 안돼서 끝난 채비는 뭔가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들뜬 마음으로 여러 후기들을 읽으며 시간을 기다렸다.
자전거를 옆에 두고 버스를 기다렸다.
부모님께 전화했다.
내일이 설인데 언제 올꺼냐는 엄마의 물음에
약간 망설이다 못간다고 했다.
여행, 국토종주를 하러 간다고 했다.
완주하고 나서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가라 앉았다.
전화기 너머로 서운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엄마는
"아들 멋있네. 응원할게. 계속 연락해."라고 말씀하셨다.
아빠도 그저 웃으시며
'아들 믿는다'고 해주셨다.
힘이 났다.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인천에 도착했다.
종주의 출발점인 '서해-아라갑문' 이 있는 곳이다.
안내원 분들의 도움을 받아,
자전거를 지하철에 싣고 '검암역'으로 향했다.
검암역의 야경이 너무 예뻤다.
바로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종혁이가 출발점이 검암역에서 꽤 떨어져 있다며,
근처 찜질방에서 자고 아침 일찍 출발하라고 말해줬다.
그러기로 했다.
찜질방을 찾다가 배가 고팠다.
11시가 넘었던 것 같다.
근처 24시간 순대 국밥집에서 밥을 먹었다.
내일 아침도 여기서 먹고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밥 먹고 찜질방을 찾는 데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자전거로 5분 거리에 있었는데.
이때는 카카오 네비가 없었다.
티비 소리, 설거지 소리, 코 고는 소리,
조금의 추위, 약간의 설렘 덕분에 잠을 설쳤다.
어차피 일찍 일어나려 했기 때문에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