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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융한삶 Jun 27. 2024

2015 자전거 국토종주_하루


새벽 5시 30분쯤 기상했다. 

추웠다.


기모 패딩과 긴바지를 입었다.


장갑을 꼈지만 손이 시렸고,

마스크를 꼈지만 얼굴이 추웠다.


어젯밤 갔던 국밥집을 찾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출발했다.


시작 지점인 '서해 아라갑문'을 찾아.


표지판도 낯설었고 자전거 도로도 낯설었고,

캄캄한 새벽도 낯설었다.


가로등이 없는 곳에선 좀비라도 나올 듯 어두웠다.





어둑함이 조금 잦아들 때쯤,

서해 아라갑문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인증센터는 빨간 전화 부스처럼 생겼다.

출발지에 도착했다는 설렘에 부풀었다.


해리포터가 처음 플루 가루로

벽난로 순간이동을 할 때 이런 기분이었을 것 같았다.


살며시 문을 열고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인증수첩이 없었다.


벽에 붙은 안내를 읽어보니

수첩은 옆에 있는 건물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아홉 시부터.


근데 지금은 일곱 시.


어쩔 수 없었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근처에 영동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었다.

여기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오픈은 여덟 시.


화장실 변기에 앉아 

한 시간을 떨었다.





영동 고속도로 휴게소 랜드마크





앙증맞은 뒤태





사진 찍는 사람들을 또 찍었다.





한 시간을 기다려 가게에 들어갔다.

무슨 해장국을 주문했다.


고기도 없고 맛도 없었다.

가격은 비쌌다.


국밥집을 못찾은 게

너무나 슬퍼졌다.





아홉 시에 드디어 수첩을 샀다.


이제 진짜로 출발하려는 찰나,

인증부스 옆 공기 펌프가 보였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으려고 하는데,

바람이 빠지기만 하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타이어는 갈수록 말랑해지고 있었고,

내 멘탈도 말랑해지고 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타이어 바람 넣는 방식에도 여러가지가 있었다.


내 자전거는 '프레스타' 방식이었고,

어댑터가 없으면 바람을 넣을 수 없었다.


아무런 지식도 대책도 없는

내 처참한 능지에 참담해졌다.


이십 분 동안 앉아서 낑낑대는데,

어떤 아저씨가 다가오셨다.


화려한 라이더복에 

고급진 자전거를 끌고서.


무슨 문제 있냐고 물어보셔서

바람이 안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자 휴대용 펌프를 꺼내서

순식간에 바람을 넣어 주셨다.


감사합니다를 

열 번도 더 했다.


진짜 시작이었다.





길을 따라 계속 달렸다.

김포, 양화 대교, 63빌딩, 국회의사당도 지났다.


잠실을 지나 팔당대교로 가야했다.

오늘 못해도 150km는 달릴 예정이었다.


잠실 경기장을 지나 한 시간쯤 달렸는데

과천 표지판이 보였다.


지도를 확인하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마음만 급했다.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벌써 이 여행에서만

이미 여러 번 느끼고 있었다.


한숨을 쉬고 왔던 길을 돌아갔다.


두 시간을 손해 보고 

광나루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인증센터 간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었다.


거리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속력에 관한 지식도 없었다.


팔당대교까지는 꽤 멀었다.


팔당대교를 건너 저녁을 먹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왠지 꼭 먹어둬야 할 것 같았다.


이 초계 국수는 꼭 다시 가서 먹어보고 싶다.





양평 군립미술관 인증센터에 올 때까지

길이 너무 예뻤다.


댐, 터널, 다리, 기찻길, 시골길이 잘 어울렸다.


그런데 점점 힘이 들었다.


초점이 흐려졌다.

자꾸 시야가 두 개로 보였다.


쉬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고,

눈도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다.


내 체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생각해 둔 숙소는 없었다.


네이버 지도로 찜질방을 검색하면서 달렸다.


일단은 이포보까지 가기로 했다.






걱정과 달리 길이 좋았다.


저녁인지도 잊을 만큼,

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등이 우아하게 밝았다.


야경이 너무 예뻤다.





하지만 잠시였다.

빛은 금방 끝났다.


가로등길이 끝나자 어둠 뿐이었다.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했다.


이제야 자전거의 라이트를 켰다.


이포보까지 적어도 40분은 남았고,

어디까지 어둠일지 알 수 없었다.


크게 숨을 쉬고 페달을 밟았다.



(빈 사진 아님)


너무 무서웠다. 정말 진짜 무서웠다.

길은 끝도 없이 어두웠다.


이어폰 한 쪽이 갑자기 들리지 않았고,

바람 소리가 음산하게 느껴졌다.


목을 타고 소름이 계속 따라왔다.


지도를 아무리 봐도 계속해서 시골길이었다.

표지판도 잘 보이지 않았다.


가파른 오르막이 나왔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눈 때문에 

발이 계속 미끄러졌다.






왼쪽 비닐하우스에선

희미한 빨간 빛이 기분 나쁘게 새어나왔고,


오른쪽 산장 앞에 세워진 차는

빨간 눈을 계속 깜빡이고 있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생각났다.

119에 전화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겨우 오르막길을 넘어 내리막길이 나왔지만,

아스팔트 길엔 서리가 껴있어 미끄러웠다.


브레이크를 꽉 잡고 내려갔다.


가로등은 듬성듬성 있었고,

무덤도 띄엄띄엄 보였다.


그렇게 꽤 오래 달리자 빛이 보였다.


드디어 어둠에서 탈출했다.


수명이 짧아진 기분이었다.





방금 빠져나온 어둠길





어둠을 빠져나오자,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는 이포보가 보였다.


긴장이 풀렸다.

울 뻔했다.


벌써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다리를 건너

여주보까지 가는 걸 생각하고 페달을 밟았다.


가도가도 길을 못 찾았다.

숙소도 없었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을 헤매다가

다리로 돌아왔다.


다시 다리를 건너오자

눈 앞에 여주보로 가는 이정표와 편의점 등이 있었다.


애초에 다리를 건널 필요가 없었다.

지쳐서 시야가 좁아진 것 같았다.






오늘은 그만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처 허름한 모텔에 방을 잡았다.


열 시가 넘었다. 


무릎이 아팠다.


뿌리는 파스를 사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췄다.


피곤했다.





내일은 

오늘 못 간 거리만큼 


더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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