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단상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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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융한삶 Feb 28. 2025

여행에 대하여



여행을 그리 갈구하지 않는다. 여행이란, 지금 있는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변화된 분위기를 만끽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에게 여행은, 잠깐은 신선하고 새롭지만 결국엔 똑같다고 느껴진다. 아무리 비행기를 타고, 유람선을 타고, 케이블카를 타고, 사파리 투어를 하고, 제트 보드를 타고, 롤러코스터를 탔어도. 심지어 아주 좋은 곳에서 자고, 꽤 비싼 음식을 먹어도 아주 잠깐일 뿐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잠시 동안은 신나고 설레지만, '이곳이 내가 떠나온 곳과 뭐가 그리 다르지' 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곳도 결국 관광객들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상품들이 있다. 관광지는 누군가의 일터일 뿐이다. 내가 출근할 때 매일 보는 현대옥 본점도 마찬가지다. 전주로 여행 오는 사람들에게는 관광 명소지만, 식당 종업원들에게는 똑같은 노동일 뿐이다. 노동을 하며 그들도 타지로, 외부로의 여행을 꿈꾸겠지.






이어령 선생님은,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밤새 조용히 내린 첫눈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펼쳐진 어제와는 전혀 다른 흰 세상, 하루 아침에 모든 게 달라진 광경, 지루한 일상의 극적인 변화. 놀이동산이 현실과 동떨어진 디자인을 선호하는 것도, 백화점이 일상과는 전혀 다른 번쩍이는 인테리어로 치장하는 것도, 사람들이 마슐쇼나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아무리 별천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익숙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또 여행을 가겠지.



이럴 때 나는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떠오른다. 다른 곳에 있는 무언가를 갈망하며 오랜 여행을 떠나지만, 알고보니 보물은 처음부터 내가 있는 곳에 있었다는 이야기. 그렇다고 여행이 전혀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양치기 산티아고가 그랬듯, 여행을 통해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을테니.



문제는 내가 여행에서 그런 경험을 별로 해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스무살 초반에 혼자 떠난 순천 여행을 제외하면, 나에게 여행이란 대부분 그저 그랬다. 특히 도시 경관, 간판 디자인, 대형 마트, 편의점, 음식점, 건물의 구조와 모습은 어딜 가나 거의 비슷했다. 차라리 함께 하는 일행의 모습을 관찰하는 게 더 재밌을 때가 많았다.



그럼, 조선시대 혹은 문명 이전으로 떠날 수 있다면 많이 다를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삶의 양식이나 문화가 다를 뿐이지, 언어와 돈과 피를 교환하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돈 쓰는 건 언제나 재미있지만, 결국 여행은 돌아오게 되어있다. 돌아오지 못하고 계속 떠도는 건 방랑이다. 지금 여기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떠남은 도피일 뿐이다. 떠나서 도착한 곳은 또 다시 '지금 여기'가 되고, 결국 바뀌는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여행일수록 일상의 요요현상을 심하게 느끼는 것 같다.



아무리 물리적 장소를 바꿔도 '나'와 함께 있는 '지금 여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가 여행을 그리 갈구하지 않는 건, 일상이 너무 만족스럽기 때문인 것 같다. 자고 일어나 밥 먹고, 씻고, 책 읽고, 글 쓰고, 산책하고, 영화보고, 운동하고, 일하는 매일의 일상이 나는 그냥 좋다. 어떤 자극이나 재미를 자꾸 찾아 떠나기보다는 평온함과 잔잔함 속에 머무는 게 좋다. 



그러다가도 가끔 이런 생활이 못견디게 지루해지면, 문득 혼자 조용한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다. 

도착한 그곳에서의 시간도 다른 형태로 잔잔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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