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갈구하지 않는 이유
나는 여행을 그리 갈구하지 않는다.
이 고백은 이 시대에서 반역으로 번역된다. 모든 것이 이동을 전제로 설계된 세계에서, 머무름을 택한다는 것은 거대한 흐름에 맞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반역은 무력하다. 저항 의지조차 없다. 단지 여행이 주는 신선함이 '아주 잠깐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행은 탈출을 약속한다. 지금 있는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변화된 분위기를 만끽하리라는 약속. 그러나 이 약속은 기만적이다. 아무리 비행기를 타고, 유람선을 타고, 케이블카를 타고, 사파리 투어를 하고, 제트 보드를 타고, 롤러코스터를 탔어도, 결국 똑같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여행이 근본적으로 '나'를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
이어령 선생은 통찰한다.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밤새 조용히 내린 첫눈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고. 그는 인간이 변화 자체에 중독된 존재임을 간파한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게 달라진 광경, 지루한 일상의 극적인 변화를 갈망하는 것. 놀이동산의 현실 도피적 디자인도, 백화점의 번쩍이는 인테리어도, 영화관의 어둠 속 스크린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다른 곳을 꿈꾸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아무리 별천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익숙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또 여행을 간다. 이 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
마테를링크의『파랑새』와 코엘료의『연금술사』를 떠올린다.
다른 곳에 있는 무언가를 갈망하며 오랜 여행을 떠나지만, 알고 보니 보물은 처음부터 내가 있는 곳에 있었다는 이야기. 이 서사는 여행의 역설을 정확히 포착한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은 이미 우리 곁에 있지만,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멀리 떠나야 한다는 역설.
문제는 그런 경험을 별로 해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스무 살 초반 혼자 떠난 순천 여행을 제외하면, 여행이란 대부분 그저 그랬다. 도시 경관, 간판 디자인, 대형 마트, 편의점, 음식점, 건물의 구조와 모습은 어딜 가나 거의 비슷했다. 세계화가 만든 동질성의 풍경 속에서, 차이를 찾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차라리 함께 하는 일행의 모습을 관찰하는 게 더 재미있을 때가 많았다. 어쩌면 여행의 본질은 장소의 변화가 아니라 관계의 발견에 있는 걸까.
유명 관광지는 관광객들에게는 명소지만, 식당 종업원들에게는 똑같은 노동의 현장일 뿐이다. 관광지는 어차피 누군가의 일터이고, 그 일터의 노동자들도 타지로의 여행을 꿈꾼다. 이 순환 구조 속에서 여행은 하나의 산업이 되고, 꿈은 상품이 된다.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다.
조선시대나 문명 이전으로 떠날 수 있다면 많이 다를까. 삶의 양식이나 문화가 다를 뿐이지, 언어와 돈과 피를 교환하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인간의 근본적 조건은 변하지 않으니까.
-
여행은 결국 돌아오게 되어 있다. 돌아오지 못하고 계속 떠도는 건 방랑이다. 지금 여기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떠남은 도피일 뿐이다. 떠나서 도착한 곳은 또 다시 '지금 여기'가 되고, 결국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다. 물리적 장소를 아무리 바꿔도 '나'와 함께 있는 '지금 여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행을 갈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상이 너무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 밥 먹고, 씻고, 책 읽고, 글 쓰고, 산책하고, 영화 보고, 운동하고, 일하는 매일의 일상이 그냥 좋다. 어떤 자극이나 재미를 자꾸 찾아 떠나기보다는 평온함과 잔잔함 속에 머무는 게 좋다.
이것은 하나의 선택이다. 이동의 시대에 정착을 택하는 것, 변화의 유혹에 맞서 지속을 선택하는 것. 그러나 이 선택은 절대적이지 않다. 가끔 이런 생활이 못견디게 지루해지면, 문득 혼자 조용한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도착한 그곳에서의 시간도 다른 형태로 잔잔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며.
결국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떠남에 있지 않다. 떠남을 통해 머무름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타지를 경험함으로써 고향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에 있다.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았다. 연금술사의 보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 다만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때로는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